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휘찬 Dec 08. 2020

///마무.소지품.수영

카메라의 뒷모습

바다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애초부터 목적은 바다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이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크게 놀랬다.

꼭 바다를 봐야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에게 쉽게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긴 했다.

나보다는 더 많은 계획을 가지고 오는 곳이겠지..

하지만 나는 바다 말고 사람을 보러 갔다.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

함께 간 친구 L과 그곳에서 만난 친구 P. 이렇게 셋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알고 지낸지는 꽤 됐지만, 그렇게 속 깊은 얘기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P와 P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서 얘기했고,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많은 부분이 각자가 만들어 낸 이미지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아니 어떻게 보일 수도 있는지, 신선했다. 

그걸 알고 나니, 한 발자국 정도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각자 한 발자국씩 가까워졌으니 적어도 두 발자국만큼은 좁혀졌겠지.   

2차까지 이어지던 만남을 마치고 나는 숙소로 먼저 들어왔다.

술을 하지 않는 나를 위한 두 친구의 배려였다.

나는 그 배려가 싫지 않았고, 두 친구에게도 시간을 주고 싶었다.

따뜻한 음료를 들고 들어온 숙소는 말끔했고, 번듯했다.

SNS 용으로 꾸며진 원룸이라 여러 각도로 사진 찍기 좋았고, 각도에 따라 그럴듯한 결과물이 되었다.

사진 속에는 벽 선반이 떨어질 듯 불안하게 달려있던 것도, 매트리스가 흐물거리던 것도,

네온사인 장식의 먼지도 보이지 않았다.

흰 벽에 쏘아진 빔 프로젝터의 화면은 감성적으로 찍혔지만

뒷 벽 선반에 먼지가 쌓인 채 어지럽게 널려있던 빔 프로젝터와 셋탑박스, 공유기는 사진 속에 없었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큰 창문은 원룸의 옹색함을 흐리게 만들었다.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막상 잠은 오지 않았다.

문득 P가 알고 있던 나는 이런 숙소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지도록 꾸며진 모습. 혹은 그 모습을 전해 들은 이미지. 

어떤 각도에서는 감성적이고, 또 어떤 각도에서는 행복하게만 보이겠지..

그것이 내가 원해서 인지, 혹은 남들이 원해서 인지 모르지만 결국 내가 꾸며낸 나의 모습.

P가 말했던 나의 첫인상과 나의 이미지가

결국은 내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었던, 내가 잘 찍어놓은 사진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나는 이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이 마냥 이쁠 수만은 없다.

내 카메라의 뒤에도 불안한 미래와 흐물거리는 신념과 먼지 쌓인 다짐들이 나뒹굴고 있다.

누군가의 카메라 뒷모습까지 알게 된다는 건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거기에는 떨어질 듯한 선반이나 뽀얗게 먼지가 쌓인 물건들이 있겠지만

그 부분이야말로 누군가의 눈길과 손길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날 우리는 바다를 보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카메라 뒤를 보게 되었고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출액.빠르기.오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