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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Dec 11. 2020

///감탄.개그맨.가능성

같은 자리, 다른 꿈

나의 첫 직장이었다.

처음 입사를 할 때 나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결심했다

그 결심은 첫 번째 직업의 시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준비해왔던 것들을 포기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미련 없이 쿨하게 버릴 수 있는 마음..

그건 그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낭비한 시간이 아니라서 아깝지 않다고.

시작의 문턱에 서 있던 나는 누군가의 비난이나 걱정이 들리지 않을 만큼

아니, 들려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설레었다.

머릿속 이상은 CEO였지만 현실은 막내 직원이었고,

당연히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시도를 실행에 옮기는 쪽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었고, 심장이 아니라 손과 발이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사직서를 집어던지고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서 후회하지 않았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의심하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다.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그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도 좋았다.

그들은 나의 이력을 신기하게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손절하듯 떠나온 사람이었고 그 이력은 점점 과거형이 되어갔다.

나의 첫 퇴사였다.

왜 퇴사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간단명료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인 이유가 반복되고 축적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유를 말하자면, '살고 싶어서'라고 할 수 있겠다.

퇴사를 결정했을 때, 나는 나 자신도 돌볼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상황과 모든 말들이 나를 공격했고, 찢기고 터지는 사이에 나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자, 어느샌가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찢거나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아니 이렇게 죽어갈 수는 없었다.

퇴사를 한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정리되지는 않았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 거리를 정리할 수 있듯이, 퇴사를 하고서야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오히려 생각할 것들이 더 많았고, 복잡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하지만 퇴사라는 것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마치 19살 성인의 문턱에서 인생을 설계하고 고민했던 것처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두 번째 시기를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 서서 꿈을 꾸던 시기가 있었고, 그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같은 자리에서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결심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결심이 포기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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