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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Feb 22. 2021

///잘생긴.밧줄.별빛

등산과 회사생활

"다음 주에 시간 맞춰서 등산할래?"

"그래."

처음 등산을 제안한 건 나였다.

같은 회사를 다니며 여행을 같이 간 적은 있지만, 등산은 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지금 시간이 많았다.

Y는 등산을 하기로 한 날 이틀 전에 눈 소식이 있다며 걱정하기도 했지만 나는 괜찮을 거라고 했다.

날씨가 추워진다는데 괜찮을지 걱정했지만 나는 괜찮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회사에서 이런 한파와 눈보다 더 한 일들도 헤쳐나갔으니까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늦은 아침에 만나 뜨끈한 순댓국을 한 그릇씩 먹고 우리는 산으로 향했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참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지나고 나면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이다.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한참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민의 시간도 길어지는 듯하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생활을 함께 보내고 있다 보니 서로 의지하는 부분도 많다.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정보도 공유하고, 고민도 서로 나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림길 앞에서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대로 결정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아닌지라

각자 신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만큼 각자의 시간을 충실히 채워나간 것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낮이 되자 기온이 올라서 걱정과는 달리 금세 땀이 났다.

겉옷은 안 입고 온 게 나았나 싶을 정도로 짐이 되어 손에 든 채 산에 오르게 되었다.

허벅지가 터질 듯한 오르막의 끝에는 또 오르막이 있었고

잠깐 평지인 듯했다가도 금방 오르막이 나타났다.

내리막은 잠깐이고 하늘에 닿을 듯한 급경사의 계단 앞에서 다시 걸음은 멈춰졌다.

우리가 함께 했던 회사생활 같았다.

그 회사의 생활이 유난스럽고, 특별하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산처럼 오르막과 평지와 내리막으로 되어 있었을 뿐이다.

나의 첫 사회생활이었고 Y의 첫 사회생활이어서인지 비교대상이 없어서 더 힘들었다.

Y는 인생에서도, 회사에서도 선배였던 나를 잘 따랐고 나 역시 Y를 믿고 챙겨가며 회사생활을 해나갔다.

정상에 도착해 내가 담아온 커피를 나눠 마셨다.

앉아있다 보니 땀이 식어 금방 추워지는 것 같았는데 조금 식었지만 그래도 따뜻한 커피가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산을 올랐고, 비슷한 시기에 산에서 내려왔다.

힘든 순간에 따뜻한 커피를 나눴고, 그런 힘으로 산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의 회사생활은 참 등산 같았고, 이 날의 등산은 참으로 우리의 회사생활 같았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선택을 할 것이다.

아마도 그 선택으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산을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더 이상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나누어 먹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Y의 결정을 지지할 것이고 멀리서도 언제나 Y를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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