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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Feb 15. 2021

///카메라.평범한.오늘날

친구 같은 아들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아까웠다.

엄마도 내심 바람을 좀 쐬었으면 좋겠다는 눈치였다.

어디를 가든지 예쁜 카페를 찾는 나에게 면박을 주며

몇 개 안 되는 후보지 중에 만만한 곳을 골랐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오늘이 설날이었다는 것이다.

설날 때문에 모인 거였는데, 그걸 잊은 채 도로에 들어서니 이미 차가 가득했고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앞으로 가는 건지, 서있는 건지 모르는 상태로 마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비게이션의 경로는 앞으로 한참 동안 붉은색이었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쩍 신이 났다.

옛날 얘기가 쏟아졌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무슨 사건사고가 그렇게 많았는지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기억에 남아있어서 좋았다.

물론 엄마는 나의 오래된 기억에 놀래곤 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소설이라지.

큰 굴곡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나의 시간들도 이렇게 소설 같은데

엄마의 시간들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드라마일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엄마의 드라마 속에서 엄마가 신데렐라는 아니더라도, 고진감래의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제 더 이상의 쓴맛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명절이 되면 친척 어른들이 모여서 나는 알지 못하는 옛날 일들을 회상하며 웃곤 하셨는데

우리가 딱 그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친척 어른들 중 최근에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옛날 일들을 회상하는 그 자리에 더 이상 그분은 오실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졌다. 

도착하고 보니 코로나 시국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은 그득그득하고

주차장은 만차, 들어가는 길은 마비, 나오는 차는 난장판, 이런 상황이었다.

다들 그동안 집에만 있다가 설날을 핑계로 나온 듯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고.

엄마는 언젠가부터 아들 둘과 여행 가는 걸 너무 좋아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가 아들 둘을 데리고 가는 여행에서

아들 둘이 엄마를 모시고 가는 여행으로 변화되면서 좋아지게 된 것 같다.

심지어 부산에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뚜벅이 여행을 했는데도 너무 좋아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언젠가 예전처럼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면

엄마랑 이탈리아 여행을 가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하려나.

남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나를 낳은 엄마에게 나는 언제까지나 친구 같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엄마 앞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무뚝뚝하고, 무심하다.

이 곳에서도 엄마는 신이 나서 아들 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하셨지만

왜 나는 질색을 했는지 모르겠다.

얼떨결에 가게 되어 머리도 감지 않고 모자를 눌러썼지만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이었나 싶다. 

어차피 엄마한테 그런 건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엄마는 좋았던 날씨, 봄날 같았던 바람 그리고 행복했던 시간만 기억할 텐데.

그래도 친구 같은 아들이 아들 같은 친구보다는 훨씬 낫지.

내가 그렇게 된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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