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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Feb 01. 2021

1월의 기록

2021년 1월

#13권의 책, 8편의 영화, 6편의 드라마


낯선 새해를 맞이했다. 끌려가듯이 새해를 맞이 하지 않은 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팔을 쫙 벌리고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는 건 참 오래간만이었다. 

산꼭대기에 서서 알몸으로 일출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랄까. 

노출증이나 경범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로 자유로웠고 가벼웠다.

연휴 끝에 다가오는 업무를 걱정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서 새해를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매일 저녁 자기 전에 내일의 계획을 세웠다.

대부분 나 혼자만의 독서와 운동으로 채워진 계획이었지만 규칙적이었다.

좋은 시간이었다.라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계획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후회의 여지가 없도록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선물처럼 주어진 휴식시간이 처음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었지만 이젠 그 시간도 익숙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다 보니

여유 시간은 많았고, 이 시간을 빈 시간이 아니라 채운 시간이 되도록 노력했다.

예쁜 카페, 맛있는 디저트를 쫓아다니지 못하니 집을 카페로 만들어야 했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독서대를 끌어당기면 도서관이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딥펜의 매력에 집을 화실로 바꾸거나

늘어난 실내 활동이 면역력 저하와 숨겨지지 않는 지방의 증가를 초래하지 않도록

집은 주기적으로 피트니스 센터로 변신했다.

작년 같은 기간의 2배가량이 되는 가스요금을 보고 놀라긴 했으나,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옷을 살 필요가 없어서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출 보존의 법칙인 건지, 그 지출은 고스란히 책으로 옮겨가

일주일에 2-3권 이상의 책들을 계속 구입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타인을 신경 쓸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다 보니 내가 어떻게 이걸 잊고 살았나 싶어

가스요금 고지서를 보고 놀랬을 때만큼이나 놀라기도 했다.

나의 1월은 13권의 책과, 8편의 영화와, 6편의 드라마뿐만 아니라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많은 것들로 채워졌고, 그것으로 행복했다. 

 

* 지출내역을 확인해보니 몇 개 산 옷이 있어서 '거의'라고 수정



#생일


나는 생일 1월 초인 관계로, 생일이 지나야 새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크리스마스에서 시작된 연휴 기분은 연말 시상식과 1월 1일을 지나고 생일까지 지나야 비로소 사그라든다.

따지고 보면 크리스마스부터 내 생일까지는 2주가량이 되는데

생일 덕분에 누구보다 긴 연휴를 즐기는 셈이다.

어렸을 때는 생일이 방학이라 많은 친구들의 축하를 받지 못해 억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못 받은 축하를 이제 받는 것인지

매년 과분한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생일을 보내고 있다.

선물은 상관없이 적어도 1년에 하루, 나를 생각해준다는 것.

내 생일을 축하해줄 만큼 서로의 추억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올해는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데 유용한 선물을 많이 받아서

좋은 시간을 채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홈카페는 거의 완성형이라, 곧 메뉴판이라도 만들어야 할 정도다.



#폭설


새해가 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장맛비에 계곡물 불어나는 게 그렇게 무섭다던데 그 날의 폭설도 그에 못지않게 무서웠다.

몇 번 있지도 않았던 1월의 외출.

하필 그 날, 눈이 쏟아지다니.

점점 커지던 눈송이는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쌓이는 듯 녹는 듯 날아다니던 눈은 잠깐 사이에 인도와 차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

그렇게 걸어가다가 왕복 8차선의 중앙선 즈음이나 대형 사거리 가운데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버스는 정류장에 묶여 오지도 않고, 

택시는 당연히 잡히지 않았다. 아니, 차도에 차가 없었다.

(지하철의 소중함. 서울 지하철은 당신의 약속을 지켜드립니다.라고 했지만 지하철 없는 동네라니.)

9시에는 다들 영업 마감이라 어디 들어가 눈을 피할 수도 없어서 집에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상이변으로 혹한이 찾아온 지구에서 아들을 찾아 떠나는 영화 <투모로우> 주인공처럼, 

눈보라를 헤쳐가며 버스를 찾아 떠났고, 결국은 기어가다시피 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차들을 슬금슬금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나를 괴롭힌 것은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하고 한참 전에 주문해 놓은 곱창볶음이었다.

당면 불면 맛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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