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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Mar 01. 2021

2월의 기록

2021년 2월

#10권의 책, 3편의 영화, 3편의 드라마 그리고 하나의 전시


2월에는 책을 10권쯤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10권이 되었다.

목표량을 정하면 한두 권쯤 덜 읽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가 될까 봐 따로 읽을 책의 양을 정하지는 않는다.

목표량보다는 적정량이라고 해야 하나.

올해 독서의 목표를 양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으로 정했는데 그것도 같은 이유다.

소설과 산문 같은 문학에 치중되어 있던 내 독서취향을 좀 더 넓히자는 생각으로

사회과학, 자연과학, 경제경영 분야의 책도 많이 읽으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약속은 한 달에 한 권씩 시집 읽기.

(아쉽게도 2월에는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물론 문학을 읽는 시간이 가장 위로가 된다.

2월에는 책 보다 다른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보지 못했다.

몇 편 안 되는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수확은 <눈이 부시게>였다.

이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다.

따로 시간을 내서 보기가 어려워서 주로 운동하는 시간에 이 드라마를 봤는데

마지막 회쯤을 볼 때는 실내 사이클을 타면서 울었다. 

그리고 사이클에서 내려와서 마저 울었다. 

다행히 집이었지만 누군가 그런 나를 봤다면 참 이상하게 생각할만한 장면이다.

허벅지가 많이 아픈가라고 생각할 수도.

역시나 인생 드라마로 꼽을만했지만, 운동하면서 볼 드라마는 아니었다.

 

#피아노


이번 달에 피아노에 관련된 글을 한 편 썼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오랜 로망이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다짐의 글이었다.

사실 그 글을 쓸 때는 이미 집에 피아노가 도착한 후였다.

따지고 보면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다짐은 

글을 쓰기 전에, 피아노가 도착하기 전에, 피아노를 구입하기 전에 이미 한 것이었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는 것과 피아노를 구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정도의 로망이었다고 합리화해본다.

책이 아닌 다른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던 것이 바로 피아노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피아노를 쳤다. 헤드폰을 끼고 새벽에도 피아노 연습을 했다.

어느 날은 자려고 누웠다가도 '아. 오늘 저녁에 연습 안 했다.' 하고 일어나서 피아노를 치고 자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 앉아있던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성인이 된 후,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생각하던 날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오랜 로망이었던 캐논 변주곡을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녹턴 20번을 더듬더듬 치면서 혼자 행복해하고 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에 피아노를 들였다고 하면 

50평대 아파트로 이사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놀라거나

또는 지금 다들 주식으로 돈을 버는 판에 그 돈으로 주식이나 하는 것이 

지금 내 나이에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작은 집에 테트리스처럼 자리 잡은 피아노가 좋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주식시세를 확인하는 것보다 

눈 비비며 일어나 어디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피아노를 보면서 느끼는 행복이 더 클 것 같은데 어쩌겠나.

그리고 사실 50평대에서는 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다.


#추억여행


요즘 시대에 고향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자기가 태어난, 혹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본인은 분가했더라도, 부모님이 계속 살고 계셔서 옛 동네에 갈 일이 종종 있다거나.

나의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를 고등학교 3학년 때 떠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그 동네를 갈 일이 없었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갈 일은 어쩌다 한 번쯤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방문'의 의미로 갈 일은 딱히 없었다.

그 동네에 남아있는 친구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와의 연결고리가 뚝 끊어졌다.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자주 생각나는 요즘, 그 동네를 다녀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데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보다 좋은 않은 상황으로 떠나온 마지막 기억이 

마음속에서 강력한 울타리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지막 기억까지 화석처럼 되어 갈 때쯤이 되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녀왔고

그 학교들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던 내가 살던 집들을 가보았다.

학교는 코로나 19로 인한 출입제한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고 담장 밖에서 봐야 했다.

그 새 많이 달라진 학교는 입학하던 날 처음 들어가던 낯선 장소 같았다.  

하지만 집들은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때는 넓게만 보였던 마당은 왜 그렇게 좁아진 것 같은지

저 작은 집에 어떻게 네 식구가 살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는 어린 시절 문방구를 하던 자리에 가서 눈물을 흘리던데

서점 자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주변은 다들 달라지고, 좋아졌는데 내가 살던 집들만은 너무 그대로여서

그때가 과거인지, 지금이 과거인지 헷갈렸다.

내 앞에 어색하게 도색된 건물이 흑백사진 같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더 선명한 듯했다.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의 화석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 기억이 영원히 잊히지 않고, 나의 어딘가에 잘 묻혀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참 기쁘게 했다. 

아마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그 화석은 영원히 묻혀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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