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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Jul 13. 2021

손절이 취미입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적당한 거리 유지하기

인간의 성향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는 MBTI가 요즘 또 한창 뜨고 있다. 이 검사법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에 그 유래를 둔다.) 유행을 반복하다가 최근에 또 여기저기서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혈액형에 비한다면 MBTI는 훨씬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기업의 입사나 직무 배치에도 활용되고 있다. 나도 MBTI 검사를 꽤 오래전에 받았고, 이후에도 여러 번 검사를 한 적이 있다. 비슷비슷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계속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하는 검사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 좀 아이러니 하긴 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뭔가 나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MBTI 유형을 말하는 것은 '꼼꼼하다, 성실하다, 책임감 있다' 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성향을 꽤나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밝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MBTI 유형은 INFJ이다. 시기나 상황에 따라 MBTI의 결과는 조금씩 달라진다고 하는데 나는 거의 항상 INFJ 였던 것 같다. 인구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유형. 그래서 INFJ에 대한 분석이나 영상이 유독 더 많은 것 같다. INFJ에 대한 분석을 듣다 보면 그 자체가 그냥 나를 관찰하고 쓴 것 같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곤 한다. 물론 다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애써 부정하고 싶은 또 다른 나의 이야기 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 유튜브에서 INFJ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INFJ에게 손절당하는 유형 5가지'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는데, INFJ는 가장 손절을 잘하는 유형이라는 말로 영상을 시작한다. 단, 손절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잘한다고 덧붙인다. 일단 거기서 끄덕. 5가지 유형을 살펴보기도 전에 일단 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민감한 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나와 잘 맞을 수 없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관계에 대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바로 손절은 아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분석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다만 상대는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손절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스트레스가 계속된다면 조용히 그 관계를 정리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관계 (아마도 INFJ에게 손절당하는 5가지 유형이 여기에 속하겠지만)에서는 '쟤는 원래 저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놔둬.' 같은 여지를 두지 않고, 기어코 정리를 하고야 마는 것이다.  


영상에서 제시한 INFJ에게 손절당하는 유형 5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휘두르거나 조종하려는 사람

2. 매우 이기적인 사람

3. 도덕적인 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

4.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직설적인 사람

5. 처세술에 능한 기회주의자

출처 : Youtube /연근언니 /INFJ에게 손절당하는 유형 5가지  https://youtu.be/v98OfUgtmEg


5가지 유형은 당연히 누구라도 좋아할 수 없는 유형이다. 나의 경우는 누군가에게서 저런 행동이나 언행을 본다면 쿠폰에 도장 찍듯이 차곡차곡 적립이 되어가다가 어느 순간에 '아, 이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다가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구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그럼 손절하게 된다. '손절'이라는 표현은 좀 과격해 보이므로 자연스럽게 그 관계를 멀리하고 끊어낸다는 것이 맞겠다. 도장 쿠폰을 다 모으면 '서비스 손절'을 받는다고 해야 하나. 특히 INFJ의 특징으로 제시한 것이 3번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에게 피해가 오면 손절을 하는데 반해 INFJ는 본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3번 같은 경우에서도 손절을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끄덕. 나 역시 그런 사람의 경우 상종할 수 없는, 상종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대뽀인 사람 (막무가내인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일처리든 인간관계든 '무대뽀인 사람'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INFJ에게 손절당하는 5가지 유형을 보니 '무대뽀인 사람' 은 1,2,3,4번에 골고루 포함되는 사람이었고, 거기에 본인의 이익이나 성과를 위해서 (5번)라는 전제까지 붙으면 그야말로 나에게는 '극혐 끝판왕'이었던 것이다.  


손절이 취미입니다.라는 제목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모든 인간관계를 무조건 내 기준에 맞추려는 것은 아니며 쉽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서 오는 기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그 관계를 발전해나간다. 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유형,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좋아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1,2,4,5번의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3번의 경우는 애초에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동등한 관계라고 느껴지지 않고 이용당한 듯한, 나만 희생하는 듯한, 배려하지 않는 듯한 상황에서 오는 상처. 어쩌면 그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너무 예민하게 군다며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의 범주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바로 내가 깔끔하게 손절을 '잘'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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