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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Apr 12. 2021

잘 먹고 잘 사는 것

원하는 대로다먹는 건아니다

나는 마른 체형이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표준체중에 한참 못 미치는 '가시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젓가락', '막대기', '이쑤시개' 같은 가늘고 긴 무언가가 별명처럼 따라붙곤 했다. 그래서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내가 봐도 너무 마른 나의 몸이 부끄러웠다.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스쳐 지나가는 시선도 다 내가 말라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뼈라도 굵고, 골격이라도 컸으면 좀 덜했을 텐데 그것마저도 나는 갖지 못했다. 이런 마른 몸과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겠지만 후천적으로 나는 입이 짧은 편이기도 하다. 먹는 양이 절대적으로 적지는 않지만 금방 배가 차는 편이다. 그동안 나에게 축복받은 체질이라며 부럽다는 사람을 꽤 많이 만났다. 살면서 한 번도 살이 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체질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마른 몸으로 인해 항상 병약한 이미지, 힘없고 비실거리는 이미지를 떨쳐낼 수 없었고 바람 불면 날아간다, 한 대 치면 부서진다는 말을 들었다. 학창 시절에는 살을 찌우고자 노력한 적이 없지 않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몰랐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이는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을 해야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다 보니 운동은 언제나 저 뒤로 밀려나곤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린이 영양제 광고에 나오는 '밥 잘 안 먹는 아이'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밥을 어지간히도 안 먹었다. 밥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게 일이었고 그런 나를 엄마는 항상 밥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졸졸 쫓아다니며 입에 밥을 떠 넣었다. 주위에 어른들은 엄마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나는 죽었을 거라고도 했다. 그렇게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더 이상 밥그릇을 들고 나를 쫓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대신 밥을 먹지 않으면 밖에 내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아침밥을 다 먹지 않으면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지각을 하거나 말거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그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도록 해주셨다. 아마 그전에 사고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횡단보도 가는 그 길에 선생님의 양 옆에서 선생님 손을 잡고 가는 그 자리를 아이들은 모두 좋아했다. 한 번은 내가 선생님 손을 잡고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내 팔목을 잡고는 깜짝 놀라셔서 살 좀 쪄야겠다고 하셨다. 팔목인지 손가락인지 모르겠다는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창피했다. 그때부터일까. 마른 몸이 콤플렉스가 되고 창피하고 감춰야 할 것이 돼버린 게. 그리고 그때 몰랐던 것이 있다면 '살 좀 쪄야겠다'는 말은 이후로도 수없이 듣게 될 것이라는 것. 그나저나 그때 엄마가 밥그릇을 들고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먹을 걸 숨겨둘 정도로 밥을 잘 먹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나는 배가 금방 찬다고 했는데, 금방 채워진 배는 금방 비워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비워지면 군것질로 허기를 채웠다. 나는 스스로를 빵돌이라고 할 만큼 빵이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 류를 좋아하고, 한때는 보약을 챙겨 먹듯이 야식으로 꼬박꼬박 라면을 먹기도 했다.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먹었다. 그게 다 살찌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데 이렇게 잘 챙겨 먹으니 당연히 살이 찌겠지라는, 인체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무식한 생각이었다. 나는 살이 찌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과 뭐라도 열심히 먹으면 살이 찔 거라는 더 큰 믿음은 결국 내장지방과 복부지방을 남겼다. 가느다란 팔다리는 그대로인 채 가장 답이 없다는 '마른 비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지방은 십수 년째 여전히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옷을 입으면 티가 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도 잘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도 못 본 체했다. 왜냐하면 나는 대외적으로 '가시남'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2년 동안 체중이 늘어서 정상체중에 가까워졌는데, 나름 뿌듯해한 적도 있으나 결국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체중 증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정말이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몸뚱이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 내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게 되었다. 항상 이런저런 핑계가 많았는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운동이었다. 예전에 글로도 쓴 적이 있지만, 처음에는 수영이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주위에서 다들 만류했고, 솔직히 나도 '말랐지만 배만 나온' 몸을 노출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수영이든 뭐든 운동을 하려면 그전에 몸을 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다니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는 게 좀 웃기지만, 일단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도 하고, 재미도 좀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4-5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나는 몸짱이 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재미를 느낄 정도로 몸이 조금씩 변해갔다. 홈트레이닝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애초에 나의 목표는 근육질의 몸짱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그 목표에는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과제를 해내려고 한다. 마지막 과제는 바로 '내장지방 제거하기'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두 달 정도 식단 조절을 같이 할 계획이다. 밀가루와 군것질은 완전히 끊고, 건강한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잘못됐던 식습관도 고치고 싶다. 아침에 공복 유산소 운동을 추가하면서 운동 강도도 조금 높였다. 이제 5일 차가 되었는데 여전히 냉장고에 남아있는 간식거리가 생각나고, 자극적인 밀가루 음식이 생각난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미루게 될 테니 꼭 잘 마무리하고 싶다. 진짜 잘 먹고 잘 사는 것. 올해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 


휴대폰은 대략 2년이면 바꾸게 되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들도 낡거나 고장 나면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기 마련이지만 몸은 그럴 수가 없다. 

수십 년 동안 아껴가며 오래오래 잘 써야 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과거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잘 먹고'는 아무 때나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는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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