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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Mar 22. 2021

시간에 대한 집착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

요 근래 계속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보통 1-2시쯤 잠에 들었는데, 여러 가지 사소한 이유로 잠드는 시간이 조금씩 밀리더니

새벽 4시 반이 되어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생겨났다.

심지어 11시에 자려고 누웠는데 4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기도 했다.

늦어지는 취침시간에도 불구하고 기상시간은 크게 늦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수면 시간 자체가 줄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속되고 나니,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어느 날은 아예 밤을 새운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몸이 축축 늘어지고, 시각과 손 끝이 둔해졌다. 몽롱했다.

나 자신이 느낄 만큼 정신과 육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뭔가 이상이 있었다. 

불길한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플 이유는 없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이런 수면장애를 겪는 것이 좀 이상했고,

부족한 수면으로 인한 각종 증세들과 그와 더불어 나타난 여러 가지 이상신호까지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먼저 카페인을 끊었다. 그래 봤자 하루에 커피나 홍자 1-2잔 정도 마시는 게 전부였지만

그나마도 며칠째 마시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위의 여럿에게 털어놓았다.

햇빛을 안 받아서, 낮잠을 자서, 마음이 불편해서라는 의견부터 공황장애설까지 

점점 더 나를 환자로 만들어가는 듯했다.


굳이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요즘 최고로 행복하고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최근 며칠 동안 집에만 있기는 했으나

그건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뿐이고 사실은 약속이 굉장히 많은 편이라 밖에 잘 나돌아 다니며,

낮잠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밤에 잠에 들지 못하는 건 그 날 하루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래요."

나름 논리적이고, 의학적인 의견 가운데 이토록 감성적인 대답이라니.

하지만 제일 부정하기 어려웠다.

악으로 깡으로, 나 자신을 갈아 넣어서라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휴식을 만끽하고 있지만 어쩌면 나는 결과물이 주어지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던 일들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결과물이 필요 없는 것들로 채워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결과에 대해 평가를 받거나, 비난을 받을 일이 없다. 

왜 그것밖에 못했는지, 왜 그렇게밖에 못했는지 해명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물이 주어지지 않는 생활 속에서 내심 불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으니 과연 내가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냈는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간을 허투루 소비한 건 아닌지,

오늘 너무 한 게 없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리고 밤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며 무언가를 더 채우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일은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가 빠르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자꾸 시간에 집착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내일을 만들고, 지난달과 이 달의 시간이 다음 달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뭔가 변화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게다가 누구나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계산 없이 잠자리에 누워서 

'아, 오늘 하루도 수고했네.'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

그걸로 충분한 건데 그게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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