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
갯벌에 박힌 돌 같은 하루를 보내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이 시간은
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별거 아닌 이 시간을 하루종일 기다리고
이 시간을 끝내야 비로소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이 든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걷기 위해서 일부러 먼 길을 빙 돌아온다.
가라앉은 밤공기를 뚫고 걸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입에서 나온 멜로디와 푸념들이
멀리 퍼져나가지 않고 밤공기와 함께 금세 가라앉아서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오랫동안 내 마음엔
구름 가득 비가 내려
따스한 햇살 비추길
간절히 바랬죠
어깨를 적신 빗방울도
마르면 나만 홀로
남겨질까 너무나도 두려웠죠
태연의 <U R>이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너무 또렷하게 들리는 가사.
내 발걸음, 내 멜로디, 내 혼잣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언젠가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나는 비를 맞고 있다.
누군가 우산을 뺏어가지도 않았고, 내 등을 떠밀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 비 오는 길을 택했다.
어떤 날은 비에 젖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비가 오지 않은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어깨를 적시는 이 빗방울이 사라진다면,
그리고 젖은 어깨 위로 햇살이 비추지 않는다면,
그때는 더한 괴로움이 있을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이다.
그 두려움은 오늘도 나를 먼 길로 돌아가게 만든다.
텅 빈 푸른 언덕 위에
무지개는 지붕이 돼
그 아래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아요
세상 가장 평온함과
처음 느낀 설렘
누구보다 사랑스러워
오늘은 일부러 더 먼 길을 택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발자국이 촘촘히 떨어져 있었다.
오늘의 발자국, 어제의 발자국, 그 전의 발자국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지개 지붕아래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희망이
발자국마다 진하게 묻어있었다.
어두운 밤길 위에서
수많은 발자국이 빛을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