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사람, 삶 (해파랑길 1회 차)

오륙도에서 기장까지 (20171230-20180101)

by 걷고

해파랑길 1회차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비가 조금 내리는 날씨에 나들이님, 행복듬이님 그리고 저 세 명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행복듬이님은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들이님은 속도를 내어 달려서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페달을 밟았습니다. 신호등 막 바뀌는 아찔한 순간에도 나들이님은 계속 위험한 질주를 하셨고, 저는 뒤에서 쫓아가며 천천히 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도착한 곳은 나들이님이 머무시는 2층 침대가 두 개 있는 기숙사. 어느 순간 저는 어느 선원에 가서 스님들과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행복듬이님은 이번 여행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시면서 많은 도움을 주시고 동참하지는 못하셨습니다. 나들이님의 길에 대한 갈증과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강하고 ‘직진 고’를 외치며 깃발을 높게 들어 올리고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저는 뒤에서 후미를 보며 쫓아가기 바쁩니다. 어제 길을 걸으며 기장 근처에서 ‘세나니 선원’을 보고 안을 잠깐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선원은 미얀마의 ‘파욱 센터’라는 유명한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센터의 한국 분원입니다. 며칠간 머물며 수행을 하고 싶어서 연락을 약 두세 달 전에 한 적이 있는 곳입니다. 제 마음 속에는 미얀마 ‘파욱 센터’에 서너 달 머물며 집중수행을 하고 싶다는 꿈은 꾸고 있지만, 아직 아내에게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안이 ‘세나니 선원’에라고 가 볼까 하는 생각에 연락을 취했던 곳입니다. 아마 제가 이제는 집중 수행을 할 시기가 다가온 것 같기도 합니다.

길을 걸으며, 또 길을 떠나며 새로운 길동무들을 만나게 되거나, 늘 만났던 분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서로 의지하고 정과 마음을 나누며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나갑니다. 아내는 출발 전날 밤에 샌드위치를 인원 수 만큼 만들어 주었습니다. 장도를 축하하는 아내 나름대로의 속 깊은 배려입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동참하신 분들 역시 각자 준비해 오신 음식을 나누며 함께 할 긴 여정을 즐겁고 행복하게 마치자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많은 돈을 친한 친구에게 빌려 주어서 마음고생을 하신 분은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 끝에 과감하게 돈을 포기하고 친구를 택하시겠다는 어려운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길을 걸으며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동료들이 자신을 ‘차가움’과 ‘에너지’로 표현을 한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따뜻한 마음과 긍정적인 사고로 임직원들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계셨습니다. 길을 걸으며 그런 갈등을 스스로 정리하고 성숙의 발판으로 삼으시는 그 분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내년 6월에 정년퇴임을 맞이하시는 분은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관심을 보이시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퇴직자 모든 분들의 공통 관심은 퇴직 후의 삶입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큰 고민거리입니다. 아침에 눈을 뜬 후에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주는 상실감과 자괴감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 먹습니다. 그 분은 늦게 사회복지 공부를 하셨고, 지금도 그 분야에서 근무를 하고 계십니다. 그 분에게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연락처를 알려 드렸습니다. 용기를 내어 퇴임 후 한번 다녀오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걷는 내내 지치지도 않는지, 홍길동처럼 이곳저곳에 나타나 사진을 찍고 필요한 음료수를 나눠주시고, 짐을 대신 들어드리거나, 길동무들의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알아채시고 그에 필요한 모든 언행을 직접 몸으로 보여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얼굴은 내내 미소로 가득하고, 가끔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검색의 귀재로 낯선 길에서 우리의 내비게이터와 안내자 역할도 해 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모두에게 봉사, 배려,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하심’과 ‘봉사’를 이번 여행의 화두로 삼았지만, 그 분은 직접 몸으로 이미 실천을 하고 계셨습니다.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특히 가정과 가족, 회사에 묶여있는 끈을 풀어내고 달려 나오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하고 실천을 위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자유롭게 나오실 수 있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분에게는 가정과 가족을 떠나 홀로 나서기가 쉽지 않기에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많은 노력의 결과로 함께 걸을 수 있게 된 뿌듯함과 나오기 위한 준비 과정의 어려움이 섞인 감정을 눈물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눈물은 너무나 아름다운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을 통한 정서적 방출은 우리의 삶을 좀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자신에게 길을 가르쳐 준 분에게 감사의 표시로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 오셔서, 하루 함께 걸었던 분의 정성 역시 고마웠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타인에게 받은 고마움을 쉽게 잊고, 고통은 오랫동안 간직하며 괴롭게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고마움의 표현 방식을 보며 그 분이 더욱 높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외에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힘들었던 시간, 상황, 갈등 등을 풀어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는 걸은 후 뒤풀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하나의 인생 보너스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열 명의 참석자 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며 어떤 사소한 불만이나 갈등 없이 2박3일을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 참으로 성숙된 길동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점점 더 나은 존재, 성숙한 인간,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길과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의 마음 역시 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열린 대화는 우리를 더욱 더 심리적으로 결속이 되게 만들어 ‘나’와 ‘너’라는 대립 개념이 아닌 ‘우리’라는 개념을 체득하게 만들어줍니다.

해안가 길을 따라 조성된 해파랑길은 아름다웠습니다. 바다 바람과 내음, 파도소리는 우리의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길이 조성이 되어 산과 바다를 동시에 걸을 수 있었습니다. 위험한 구간은 나무데크로 길이 조성되어 있었고, 모래사장을 걷기도 하였으며, 폐철길을 따라 걸으며 추억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겨울 날씨 같지 않은, 마치 늦은 봄 같은 날씨는 우리의 걸음을 좀 더 가볍고 흥겹게 만들어 주었으며, 우연히 들린 식당은 유명한 맛 집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기도 하였습니다. 부산에 도착하여 해안에 조성된 흰여울길은 아름다웠고, 이바구길은 옛날 어려운 시절 우리의 일상을 느낄 수 있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해파랑길 조성을 위해 많은 분들이 수고를 하셨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리본이나 길 안내 표식이 많지 않고, 더군다나 그 표식의 크기도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이 나눠지는 주요 지점에 안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길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아마 외국인들이었다면 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숙소와 길의 연계가 전혀 되어있지 않고, 식당이나 화장실 등 주변 편의시설에 대한 안내나 접근성이 좋지 않았습니다. 스탬프함은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 길이 많은 분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부분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길은 아름다운데, 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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