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GOD 모든 멤버들이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모 방송국의 TV 프로그램인 ‘같이 걸을까?’ 를 시청했다. 프랑스 루트의 일부인 레온에서부터 콤포스텔라까지 약 300km를 걷는 프로그램으로, 전체 순례길의 약 1/3에 해당하는 거리다. 평상시에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연예인들에게는 이런 거리를 걷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번 여정은 아주 귀한 경험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프로그램을 보며 부러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스페인 공항에 도착하여 준비 된 전용 리무진 버스로 레온까지 이동하는 것도 부러웠고, 첫날 광장을 바라볼 수 있는 호텔 수준의 숙소에서 머무는 것도 부러웠다. 아침 식사를 숙소 주인이 준비해 주는 것도 너무나 부러웠다. 코스가 미리 정해져 있고, 숙소도 예약이 되어있으며, 식당도 미리 예약이 된 것 같았다. 아마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해서 예약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의 경험과 비교해 보면 ‘극과 극 체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GOD의 출발은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너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여행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는 파리 공항에 도착해서 순례를 시작하기까지 2박 3일이 소요되었다. 파리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낯선 땅 프랑스에서 헤매며 숙소를 겨우 찾아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에는 몽파르나스 역에서 바욘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고, 다시 바욘에서 순례의 출발지인 생쟝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가비를 받아 들고 소개해 준 숙소를 어렵사리 찾아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로 대충 씻었고, 객실과 통로에는 순례자들로 가득하여 정신이 없었다. 긴장과 설렘 속에서 억지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그 숙소에서 준비해 준 입에 맞지 않는 식사를 억지로 입에 넣으며 잔뜩 긴장한 상태로 순례를 시작하였다.
그 이후의 순례는 단조롭고 단순하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대충 씻고 한 두 시간 걸은 후에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으며, 다시 몇 시간 걸은 후 카페에서 맥주와 함께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씻고 빨래를 한 후에 알베르게 내 식당이나 주변 식당에서 비교적 푸짐한 저녁 식사를 했다. 3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중 아침 식사를 제공한 알베르게는 두 곳 정도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넓은 객실에 많은 순례자들이 남녀 구별 없이 이층 침대에서 함께 지내고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을 이용했다. 숙소를 배정받지 못할 것이 걱정이 되어 아침 6시 이전에 출발하고, 12시나 오후 1시경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도착 순으로 배낭을 줄 맞춰 놓으며 주변의 식당에서 알베르게가 열리길 기다리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걷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우리 삶에서 의식주(衣食住)인 옷, 음식과 주거 공간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순례길에도 역시 적용된다. 걷기에 편한 복장을 갖추었으니 옷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 가지 필수 요소 중 두 가지인 숙소와 식당이 미리 예약이 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순례의 70% 이상이 완성된 것이다. 30%는 오른발과 왼발이 교대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걷는다는 것은 불확실한 세상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것이다. 자신의 틀에서 깨어나기 위해 걷는 것이다.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자신의 알을 깨고 새로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나타나는 과정이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며 자신의 기존 개념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는 것이 걷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걷기는 홀로 떠나는 것이 좋다. 특히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긴 여정일수록 홀로 떠나는 것이 좋다. 길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에 대한 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헤어짐을 통해서 만남의 무상함을 배우기도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과 헤어짐은 정한 이치라는 말씀은 길을 걸으며 저절로 깨닫게 된다.
GOD의 TV 프로그램 ‘같이 걷는다’는 내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왜 걷는가? 무엇을 배웠는가?’ 이제 그 답을 찾았다. 자신의 알을 깨고 나와 새로운 자신으로 변신하기 위해서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 중 머물렀던 Hospital Para Peregrinos에서 세족식을 거행해 주시는 신부님과 두 분의 자원봉사자 분들을 통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진리를 배웠다. 그분들은 모든 순례자들을 차별 없이 지극정성으로 섬기듯 모시고, 다음 날 아침에 아무 미련 없이 정성스럽게 보내주셨다. 그분들을 통해서 가르침 없는 귀한 가르침을 배웠다. 우리의 삶 속에서 행복과 불행, 찬사와 비난, 사랑과 미움, 이익과 손해 등 모든 것은 잠시 머물다 떠나간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는 ‘여인숙’이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의 삶은 여인숙이며 매 순간 행복과 불행이라는 손님이 다녀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주변을 감상하거나 여유롭게 걸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앞만 보고 급하게 걸었던 것 같다. 이제는 여유롭게 걷고 싶다. 두 가지의 걷기 계획을 꿈꾸게 되었다. 하나는 삼보사찰인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를 집에서부터 걸어서 순례하는 것이다. 집에서 가출 또는 출가를 하여 승보사찰인 송광사에서 승가에 귀의를 한 후에, 법보사찰인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둘러보고, 마지막에 불보사찰인 통도사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는 계획이다. 또 하나는 늘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네팔 트레킹을 마치고 인도 북부에 있는 달람살라에 가서 성하 달라이 라마님을 친견하는 것이다.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마음의 씨를 심어두었으니 언젠가는 꽃이 필 것이다.
GOD 모든 멤버들의 완주를 기원하며, 동시에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시길 바란다. 걷기 열풍이 좀 더 강하게 불어서 많은 분들이 걷기를 통한 심신의 건강을 회복 및 유지하시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맨 좌측이 신부님, 두분의 자원봉사자분들, 그리고 나
큰 건물은 8개의 침대가 있는 성당, 뒷 건물은 화장실과 샤워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 사용하며 따뜻한 물은 태양열을 이용하여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