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태어났다는 것은 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생명의 순환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순환의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죽음을 굳이 슬퍼할 필요가 없다. 부모님, 가까운 친인척, 친구, 선후배, 지인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아마도 추억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분들과의 좋았던 추억, 좋지 않았던 기억, 뭔가 더 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괜한 미움을 지녔던 미안함 등으로 인해서 슬퍼하고 자책하고 아쉬워하는 것 같다.
더 늙기 전에 나 자신과 몇 가지 약속을 하며 앞으로의 삶을 좀 더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고 싶은 마음에 글로 정리해 본다. 비록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이 잘 이행되지 않더라도 이런 마음을 지니고 살려고 꾸준히 노력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런 내용을 기준으로 삶을 돌아보고 잘 살아왔다고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고 싶다.
더 늙기 전에 ‘단순한 삶’을살려고 한다. 외부 환경의 단순화도 필요하지만 내면적인 단순함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내면의 단순함이란 외부 상황의 자극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덤덤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늘 화두로 들고 지내왔던 ‘수처작주 (隨處作主)의 삶’을 의미한다.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이다. 자신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가끔은 도둑이나 종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가 된 것이다. 결국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주인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매년 여름과 겨울에 한 달씩 안거 기간을 정해서 수행을 하려고 한다. 최근에 ‘담마 코리아’라는 위빠사나 수행처를 소개받아서 올 겨울에 10일간의 집중 수행을 다녀오려고 한다. 전후의 각각 10일은 집중 수행을 위한 준비 단계와 정리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더 늙기 전에 뭔가를 추구하는 삶인 ‘Doing Mode’의 삶에서 매 순간을 사는 ‘Being Mode’의 삶을 살려고 한다. Being Mode의 삶은 Here & Now의 삶을 말한다. 파랑새를 쫓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일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상담심리사’이다. 내담자를 만나는 매 회기가 내게는 삶의 모든 것이다. 명상과 걷기 역시 지금-여기의 삶을 사는 아주 좋은 방법이며, 동시에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를 위한 중요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더 늙기 전에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살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설픈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내게 어떤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에게도 그 시비를 따지거나 내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싶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그대로 두고, 오직 나 스스로 잘 살고 있나를 검증하고 검증할 뿐이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려는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온전히 자신을 향해 사용해야 한다.
더 늙기 전에 ‘이순(耳順)의 삶’을 살고 싶다. 공자는 육십이 이순(六十而耳順)이라 하며 예순의 나이가 되면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이해한다고 하였다. 이는 귀가 순해지면서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이순’의 뜻을 ‘모든 말을 순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칭찬과 비난, 아부와 험담, 존경과 무시 등에 무심하게 반응하는 ‘순한 귀’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런 말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하다. 타인의 평가가 내 가치 기준이 될 수 없다. 늘 열려있는 마음으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되 평가에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타인의 말을 무심하게 듣고 넘길 수 있는 ‘이순’의 삶을 살고 싶다.
더 늙기 전에 ‘말조심’을해야겠다. 요즘 들어 말이 부쩍 많이 늘었다. 쓸데없는 말도 많이 한다. 자랑도 하고 타인에 대한 평가나 비난도 한다. 무시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비꼬는 말을 하기도 하며 가끔은 농담 삼아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말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입이 만사의 화근이라고 하였다. 입단속을 하고,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도중에 말하고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더 늙기 전에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대하고 싶다’. 내 마음속에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편견, 왜곡되고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경험에 묶여 새로운 모습을 보지 못하고, 변화를 인정하지 못한다. 예전의 감정, 느낌, 생각으로 만나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그 사람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상황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대하는 나의 모습이 차별적이다. 아주 고약한 버릇이고 반드시 고쳐져야 할 나쁜 습관이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차별 없이 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 자아성찰, 노력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을 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지금부터 노력을 하면 죽기 전에는 어느 정도 이런 기준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이 외에도 많은 교정이 필요하지만, 이런 기준에 맞춰 살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다른 잘못된 태도들이 저절로 같이 교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늙기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