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은 전장에 나서기 위해 갑옷과 투구를 입고 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전장과 같다고 얘기할 수 있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갑옷과 투구 속에 감추고 살아간다. 예상치 못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민 낯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기에 더 많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시간이 지나며 갑옷과 투구는 점점 더 두꺼워지고, 두꺼워진 만큼 자신의 모습은 작아지고 약해진다. 나중에는 자신의 원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기억 조차 못하고 갑옷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주인은 사라지고 껍데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꼴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선배들과 최근에 만날 자리가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없어서 전화를 했더니 근처의 다른 식당에서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근처에서 먼저 시작을 하였고, 후배인 내가 도착할 즈음 그 식당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니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고 화가 나고 서운했다. 술 몇 잔 돌아간 후 서운함을 표현했다. 정말로 나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입장이 바뀌면 기분이 어떨 것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고, 해소되지 않은 쓰레기 감정은 영문도 모르는 집사람에게 괜한 짜증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다음 날 강의가 있었는데 강의 제목이 우연의 일치인지 ‘대인 관계’다. 어제 의상 황을 먼저 꺼내며 불편한 상황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하였지만 여전히 그 감정이 남아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 후 각자 대인관계에서 불편을 겪었던 상황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나 모임, 선후배의 관계에서 불편해도 참고 지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주된 이유는 ‘관계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관계의 단절이 두려워 우리는 갑옷과 투구를 입고 쓰고 지낸다.
강의 마치고 나오는데 어제 만났던 한 선배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앞으로 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고맙다는 생각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 선배 입장에서 그런 내용을 보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선배와 나는 각자 입고 있었던 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선배는 자신의 변화를 위해 입고 있었던 갑옷을 벗었다. 나 역시는 이번 기회에 ‘표현하지 못하는’ 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그 선배의 큰 마음에 감사를 표한다. 또한 불편함을 선배에게 표 현한나 자신에게도 감사함을 표한다.
불편함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은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부분을 익숙하게 만드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결과에 따른 두려움을 견뎌 낼 용기가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나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중요하지 않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연습을 자신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나를 감싸고 있는 갑옷을 벗어버리고 ‘참 나’를 만나고 싶고, ‘참 나’로살고 싶어서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회적인 관계로 인해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불편함을 견뎌내며 갑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이 나중에는 상대방이 원하는 갑옷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자신의 원래 모습은 사라지고 껍데기뿐인 갑옷만 남아있게 되기도 한다.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 경제력, 권력, 나이, 학벌이라는 갑옷을 입고, 마치 그 갑옷이 자신인양 살아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갑옷을 벗고 세상에 나올 힘과 용기와 자신감이 없기에 갑옷을 앞세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그 갑옷 입은 사람을 대하는 사람은 그 갑옷을 인정하고, 그 갑옷에 걸맞은 자신의 갑옷을 입고 대한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니고 ‘갑옷’과‘갑옷’의 만남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만남은 점점 더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외롭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위해 노력을 할 때이다. 이 만남의 기본은 ‘상호존중’과 진솔한 ‘의사소통’이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참 만남을 위해서는 자신의 의사표현을 솔직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된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과연 나는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하고 존중하였는가? 아니다. 나 역시 갑옷을 입고 상대방의 갑옷에 맞게 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의도 유무와 상관없이 나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고 상처 받은 분 들에게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 계속해서 겹겹이 둘러싼 갑옷을 벗겨내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홀가분하게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