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고 Nov 03. 2024

낮아짐의 미덕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 그게 성공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중략) 제 삶의 처방전은 낮아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좀 더 큰 집, 높은 지위를 움켜쥐려 하는데 그러다 보니 과도한 경쟁과 질시, 모함이 생깁니다. 낮아지고자 하는 사람에겐 그게 없어요. 내가 좀 손해 보면 남에게 유익하니까 윈윈이죠.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좋은 게 낮아짐의 행복입니다. ”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 33년 하신 공덕으로 JW성천상 받은 유덕종 교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아상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며 지냅니다. 이번 동안거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것도 아상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하는 것입니다. 아상을 보다 쉽게 표현한 것이 바로 위에서 말씀하신 ‘낮아짐’입니다. 직접 몸으로 실천하시는 분은 무엇이든 쉽게 말씀하십니다. 아상이라는 단어도 그다지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어서 쉽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교수님처럼 일상에서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시는 분들에게는 아상이라는 단어조차 불필요합니다. 낮아짐, 이 한 마디면 모든 설명이 됩니다. 잘 알고 체득하신 분들은 무엇이든 쉽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일상에서 앎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불필요한 말도 많아지고 어려운 단어나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위에서 하신 말씀 중 “내가 좀 손해 보면 남에게 유익하니까”라는 글을 읽으며 어느 스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한 스님께서 사찰 불사를 위해 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찰 뒤 땅을 판 금액을 대중스님들께 내어주며 돈이 생겨 잘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가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팔으셨다고 해서 스님들이 항의를 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그 스님께서 “필요한 돈이 생겼고, 매입한 사람은 원하는 땅을 구했으면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며 달래셨다고 합니다. 윈윈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계산에만 몰두하게 되면 한쪽은 손해를 본 것이고, 다른 편은 큰 이득을 본 것이 됩니다. 세속적인 계산에서 벗어나면 양쪽 모두 멋진 거래를 한 것입니다.      


어제 영국에서 살다가 잠시 귀국한 친구를 반기기 위해 여러 명의 선후배가 모였습니다. 약 45년 이상 알고 지낸 선후배들입니다. 과거 여행을 하며 웃고 떠들고 술도 취할 정도로 마시며 멋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65세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식사를 한 후 이동을 해서 맥주를 마시고는 3차로 노래방에 들어갔습니다. 노래방에 간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모두 흥과 술에 취해 노래방으로 추억 여행을 떠났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노래방입니다. 술을 마시고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이 든 사람의 노래는 힘도 없고 쳐지지만 우리에게 이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는 것 외에는 어느 것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한 친구가 술을 바닥에 쏟았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좁은 노래방 바닥이 흥건히 젖었습니다. 주인에게 페이퍼 타월을 받아와서 바닥을 닦았습니다. 순간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올라오며 은근히 불편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신나게 놀고 귀가하는데 즐거운 감정과 함께 그 불편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아침에 그 감정을 잠시 꺼내어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귀찮게 생각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한 것 때문에 올라온 감정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취한 사람도 있었고, 바닥을 신경 쓰며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성질 급한 제가 나서서 한 것입니다. 그 일은 한 것도 불편했고, 또한 그런 불편함을 안고 했다는 사실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불편함을 살펴봅니다. “굳이 내가?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내가 하면 안 되지? 꼭 다른 사람이 해야만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상입니다. 낮아짐을 평상시에 실천하지 않았기에 올라온 불편함입니다.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생각을 하며 유교수님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읽어봅니다. “내가 좀 손해 보면 남에게 유익하니까 윈윈이죠.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좋은 게 낮아짐의 행복입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 들어옵니다. 사실 바닥 닦는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손해 볼 일도 아닙니다. 저의 잠깐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놀고 지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옹색한 마음이 만들어 낸 감정입니다. 다른 누구를 탓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제 좁은 소견이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저의 좁은 마음을 확장시키고, 그 연습의 과정을 충실하게 하면 될 뿐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좀 더 여유롭고 유연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면서도 막상 어떤 상황과 마주치면 저항이 발생합니다. 이는 외부 상황이 만든 것이 아니고, 저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저의 마음이 바로 아상입니다. 아상이 올라올 때 빨리 알아차리면 됩니다. 다른 생각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할 일을 또는 해야만 할 일을 하면 그뿐입니다. 잠시 불편한 마음을 지닌 저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은 좀 더 자주 하면서 아상을 조금이라도 죽이고, 저를 낮추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안거는 기간을 정해서 하며 규칙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 속에서 수행을 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참다운 안거라 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아상이 올라올 때 알아차리며 아상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덕분에 저의 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추억 여행을 함께 한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늘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날씨가 추워진다고 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외출하실 때 보온에 신경 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년이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