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오늘 걸으며 길에서 만난 단풍과 다양한 색상의 나뭇잎들이 계절을 알려줍니다. 길벗 한 명이 자신은 오늘 같은 날씨에 와 있다고 합니다. 계절과 인생을 비유한 것이지요. 저도 동감합니다. 저 역시 제 인생 계절이 지금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봄의 신록은 생기가 가득합니다. 여름의 풍성함과 무성함은 자신감으로 서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경쟁하듯 모습을 한껏 뽐냅니다. 가을은 드러낸 자신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합니다. 무성한 나뭇잎은 거친 비비람과 눈을 견디며 그 힘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 자신을 서서히 줄이기 시작합니다. 세월과 날씨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리고 겨울을 준비합니다. 겨울은 자신을 모두 버리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남은 잎새까지 떨구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무성함과 세월의 고난을 견딘 나뭇잎과 가지는 자신을 버리며 다음을 위한 거름이 됩니다. 순환입니다.
춘하추동, 태어남과 죽음은 모두 흐름이고 순환의 과정입니다. 자연의 섭리이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실존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겨우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는지를 알면서 후회하게 됩니다. 참다운 후회와 참회를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죽음을 즉 순환의 이치를 받아들이며 조용히 그리고 엄숙하고 편안하게 겨울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흐름을 거역하며 자신의 의지로 자연의 이치와 투쟁을 합니다. 순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음은 삶의 끝이라는 단견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만이 돌아올 뿐입니다.
길을 걸으며 자연의 이치를 체득합니다. 체득까지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춘하추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인간은 또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가을의 끝을 맞이하고 있는 제게 지금 이 시간은 매우 소중합니다.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겨울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욕심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겨울은 또 가을의 마지막은 있는 것도 버리고 자신도 버리는 시점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놈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욕심은 들고 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의 삶의 무게만 무거워지고 생활이 불편해집니다. 그럼에도 욕심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중생이지요.
최근에 한 길벗이 좋은 등산화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외국 등산 전문 브랜드로 탐이 나는 물건입니다. 더군다나 61% 할인가로 한정된 수량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아내에게 연락해서 구매를 부탁했습니다. 마치 빨리 사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조바심까지 들었습니다. 물건 구매에 관한 조바심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주부들이 또는 홈쇼핑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구매 마지막 순간에 버튼을 누르는 쾌감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아내가 구입했다는 연락을 받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과연 그 등산화가 꼭 필요한 물건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집에 등산화 두 켤레, 경량 트레킹화 한 켤레, 샌들 두 켤레, 일반 운동화 한 켤레가 있습니다. 굳이 제가 또 다른 등산화를 구입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제 욕심 때문에 구입한 것입니다. 후회하는 마음이 올라오면서도 동시에 처음으로 외국 브랜드 등산화를 신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자신을 설득시킵니다. 하지만 이런 자기 합리화는 저를 다시 불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미 구입한 물건이니 잘 쓸 계획입니다. 오늘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등산화가 도착했습니다. 신발을 신어 보고 만족한 표현을 하자 아내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미 제 마음은 욕심으로 인한 구매라는 후회감이 있기에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습니다. 아내에게 한 소리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왕 제 물건이 되었으니 또 많이 걷는 사람이니 이제 모든 생각 내려놓고 이 새로운 등산화와 친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물건 구매할 때 한번 더 고민하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제 방 한 구석에는 다양한 등산 용품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옷은 일 년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 아내는 홈쇼핑을 보다가 좋은 등산 용품이 있으며 구매할까 하고 묻습니다. 대부분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 옷이나 용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모두 욕심입니다. 특히 물건에 대해 별로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 욕심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길을 걸으며 노을공원에서 바라본 한강공원의 자연 풍경과 나무를 보며 서서히 자신을 버리기 시작한 자연의 모습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길을 걸으며 자연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보게 됩니다. 또한 동시에 욕심을 통해 비우기의 중요성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입니다. 반갑다! 새 등산화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