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후배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약 20년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첼로 연주를 하는 후배다. 어제한 공연이 이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그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몇몇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20년간 매주 토요일에 모여 연습을 했다고 한다. 참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이다. 단원들 중에는 끝까지 남은 사람도 있겠고, 중간에 그만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떠날 사람은 떠나게 되어 있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은 유지된다. 단장과 지휘자 그리고 몇몇 단원들만 굳게 뭉쳐서 삶의 가치를 함께 공유한다면 어떤 모임도 모임의 규모와 상관없이 잘 유지될 수 있다. 그간 애쓴 단장님, 지휘자선생님, 그리고 단원들, 특히 후배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앞으로 펼쳐질 멋진 인생을 응원한다.
이제 안거 기간 동안 만날 사람들과 모임은 모두 정리되었다. 후배 연주회는 안거 이전에 약속을 한 것이어서 다녀왔다.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응원을 보내는 고교 동창이 있다.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고마운 친구다. 며칠 전 전화를 해서 동창 몇몇이 내 소식을 궁금해한다며 한번 보자고 한다. 안거 이후에 만날 생각이다. 그 친구를 만난 지도 20년이 훨씬 넘은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빨리 보고 싶지만, 이번 안거 기간에는 다진 결의를 끝까지 유지하며 지내고 싶다.
일요일이다. 수행에는 주말이나 일요일이 별 의미가 없다. 매일 자고 먹고 화장실 가듯, 매일 하는 것이 수행이다. 하지만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는 재가 불자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며 수행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아침에 평상시보다 늦게 기상해서 식사를 하며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오랜만에 코믹한 TV 연속극도 보며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아내가 오전 10시 반경 처갓집으로 가고 나면 집은 바로 수행처가 된다. 가능하면 아내가 집에 있는 시간을 피해 수행을 하려 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도 않은데 그 시간에 수행을 한다고 골방에 앉아있거나 경행 한다고 집안을 돌아다니면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 가장 아끼고 존중해야 할 사람이 부부인데, 수행을 한다면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이런 수행은 잘못된 수행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이 편안해지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재가자의 지혜로운 수행생활이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수행 시간을 갖는다. 한 시간 경행과 한 시간 좌선을 한다. 경행 시 발등과 발가락 사이에 바람이 느껴진다. 서있는 상태에서도 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한 시간 경행을 단계별로 15분, 15분, 30분씩 진행한다. 마지막 3단계 경행 시 졸음이 몰려온다. 단순히 몸이 피곤해서 오는 졸음이 아니다. 좌선을 하는데 순의 팽창감이 느껴진다. 오늘 좌선 시간에는 많이 졸았는지 배를 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손의 팽창감을 오히려 더 많이 느꼈다. 반가부좌의 자세가 조금 불편했던지 오른쪽 다리가 저려온다. 무시하고 계속 앉아있으니 시간이 지나며 저림 현상이 풀리며 시원해진다. 한 시간 동안 자세를 바꾸지 않고 배의 관찰에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많이 놓쳤고, 오히려 손의 팽창감을 많이 느꼈다.
수행을 마친 후 점심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 한 시간 반 정도 걷고 왔다. 제법 땀이 난다. 씻고 나서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30분. 하루가 참 빨리 지나간다. 위빠사나 법문은 모두 들었다. 마하시 선원에서 출간한 위빠사나 책을 읽고 있다. 다음 주부터 2주간은 거의 매일 외부 업무가 있어서 아침 6시경 출발해서 저녁 8시쯤 귀가할 것 같다. 수행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업무를 봐야 하니 몸도 피곤할 것이다. 무리해서 수행할 시간을 만드는 것보다 두 시간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식사 후 경행과 좌선을 각각 30분씩 하면 될 것 같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법문을 다시 들을 생각이다. 이동하는 모든 시간은 경행 시간이다. 앉아 있는 모든 시간은 업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좌선 시간이다. 업무를 볼 때는 업무에 집중해서 하는 것도 수행이다.
일상생활의 편안함을 위해 또 일상 속 경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수행을 한다. 그 수행이 수행이라는 말의 한계 때문에 오히려 일상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이 방법은 좋은 수행법이 아니다. 문을 닫으면 열 줄도 알아야 한다. 결의를 다졌다면, 결의를 지키기 위해 결의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수행이고 결의인지 확실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자기 합리화로 비져질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수행의 이유와 원칙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의지만 있으면 된다. 술은 안거 이후 모임에서도 마시지 않고 있다. 술자리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술 한잔도 마시지 않고 즐겁게 대화하며 지낸다. 그러다 보니 술 마시고 싶은 생각도 저절로 없어진다. 앞으로는 공식적인 걷기 모임과 해야만 하는 업무, 가족 모임 외의 어떤 모임도 나갈 일이 없다. 꾸준히 수행을 이어가며 수행 시간도 천천히 늘려가고, 수행에 필요한 공부도 하며 편안하고 진지한 안거 기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