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영화관에 갔을 때, 이 영화의 안내 팸플릿을 읽어 보고,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전혀 모르는 내가 음악 영화를 본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그것은 별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음악을 알 건 모르건 누구나 즐길 수는 있는 것이기에. 또한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잘 모른다. 감독이 누구고, 배우가 누구고, 그 사람들이 만들고 연기를 한 영화가 무엇인지. 그냥 영화가 좋다. 마찬가지로 음악도 같다. 가수가 누구고, 지휘자가 누구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의 이름과 배경이 무엇인지. 그냥 음악이 좋다.
평상시에는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마음이 차분한 날은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있는 음악보다는 그냥 악기 연주를 듣는 것이 좋다. 예외이기는 하지만, 지난번에 봤던 '보헤미안 랩소디'는 뭔가 울림이 있었다. 아마 대중과 함께 하는 그 콘서트가 주는 에너지 때문일 수도 있고, 번역된 가사의 내용과 퀸의 열정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음악이 좋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차크 펄만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거장의 모습을 그렸다기보다는, 한 인간의 모습을 꾸밈없이 그려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심한 세대에서 오로지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노력으로 그런 편견을 극복한 멋진 사람이다. 그분이 받았던 많은 상보다도 그분의 밝고 활기찬 모습, 솔직한 모습, 부인과의 아름다운 관계, 가족들과의 소통 등이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거장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일반 사람들처럼 평범한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음악적 조언에 귀를 기울여 들을 줄 알고, 함께 공연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조화롭게 만들어 가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견해를 솔직하게 표현하며 창조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백만 불의 상금을 받은 후에 가족들과 그 기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가족회의를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영화배우 친구와 소탈하게 각자의 전공 분야인 음악과 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공통점을 발견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어느 여성 피아니스트와 같이 협연을 하는 그 장면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다. 두 개의 악기 소리가 분명하고 확연하게 구분되며 들렸다. 마치 두 개의 악기가 따로 내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느낌. 두 악기는 서로 강약을 조절하며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고 있다. 마치 대화를 하듯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타인을 무시하거나 제압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일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요즘은 각자 자신의 열등감을 가장한 우월감을 드러내려 하고 있고, 타인의 모습을 깎아내리는 것이 마치 자신의 위치와 지위가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두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의 협연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아름다운 조화와 소통을 이어간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최근에 읽었던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에서 저자는 깨어있는 행동의 세 가지 모습이 있다고 하였다. '받아들임', '즐거움', 그리고 '열정'이 그것들이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일을 즐겁게 하고, 목표와 비전을 갖게 되면 열정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자크 펄만은 이런 세 가지 모습을 완벽하게 갖춘 보기 드문 행복한 분이다. 장애를 극복하고, 음악을 통해 즐거운 삶을 살고, 열정을 지니고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 어릴 적 라디오에서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바이올린을 해야겠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부모님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자신의 음악을 지도해 줄 훌륭한 멘토인 교수를 만나 음악적 성장과 성숙을 하게 된다. 가족들의 지지, 좋은 교수와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이 거장을 이 세상에 내놓으려는 우주의 질서가 만들어 낸 필연일 것이다. 이 거장은 자신의 음악으로 우주의 질서에 화답을 하고 있다.
우주를 뜻하는 cosmos는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 자신이 사는 우주를 아름답게 만들고, 우주의 일원으로 사는 방법이다. 자신만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니고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츠하크 펄만은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해 내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또한 그 음악적 재능을 후배들을 위해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그런 봉사의 마음이 그 후배들에게 전달되어, 그 후배들 역시 자신들의 후배들에게 그런 나눔의 봉사를 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분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이고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잡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가 내게 선물한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