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일 없이 늙고 싶다

Finding Meaning in Life, at Midlife and

by 걷고


이 책의 원제는 ‘Finding Meaning in Life, atMidlife and Beyond’이다. 직역을 한다면 ‘중장년 이후, 삶의 의미를 찾아서’가 될 것이다. 요즘 퇴직 후의 삶에 대해, 그리고 노년의 삶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책은 의미치료 (Logo Therapy)의 창시자인 Viktor Frankl의 제자가 저술한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중장년과 노년기에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Viktor Frankl 은 나치 수용소에서 부인과 자식들을 모두 잃은 후에, 자유로운 몸이 되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다 수용소에서 빼앗겨 버린 의미 치료의 원고를 다시 기억해내고 ‘의미 치료’의 기반을 만들며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Vernard Ollivier는 퇴직할 즈음에 부인과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고, 사회적으로도 폐기 처분되었다는 절망감에 자살을 계획하다가 조카의 방문으로 인해 정신 차리고 콤포스텔라까지 약 3,500km 정도를 걸어간다.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자신은 결코 폐기 처분된 것이 아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이후에 ‘쇠 이유’라는 청소년 교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 역시 부인과 자식을 잃은 후에 절망 속에서 황무지 같은 산속으로 들어와 매일 상수리 열매를 100개씩 심는다. 그의 노력으로 황무지 같은 산은 울창한 숲으로 변모하고 사람들이 몰려와 아름다운 마을이 만들어진다.


의미치료의 창시자인 Viktor Frankl, ‘나는 걷는다’의 저자 Vernard Ollivier,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인 ‘엘제아르 부피에’, 이 세 사람에게는 절망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의미를 추구하며, 인생 후반부를 아름답게 만들어 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분들은 어쩌면 의미를 추구한다기보다는 그냥 할 일, 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고, 그분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한 Doing Mode의 삶을 산 것이 아니고, 그냥 할 일을 하는 Being Mode의 삶을 산 것이다. 오늘 하루를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산 것이다. 삶의 매 순간을 살아온 분들이다. 과거나 미래는 구름과 같고, 오직 이 순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의 섭리를 이미 체득한 분들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독일어 원래 제목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예’라고 대답하기>다. 모든 놀라운 일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라는 태도 덕분에 일어난다. 인간이 인생에게 주는 것과 인생이 던진 문제와 어려움을 다루는 방식이 인생 의미를 결정한다. 프랭클은 어떤 형편에서도 우리에게 선택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사건은 우리 앞에서 늘 선택을 요구하는 문제로 나타난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의미 치료는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상황을 대하는 것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다르게 변할 수 있고, 이 선택을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고, 선택에 따른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비록 바뀌지 않더라고 그 상황을 대하는 마음 자세를 달리 하면, 같은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프랭클은 ‘실존적 공허’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회사에서 퇴직을 한 후에 느끼는 상실감과 자존감 하락, 삶의 의미 상실 등도 ‘실존적 공허’에 해당한다. 아이들 모두 출가시킨 후에 갑자기 찾아오는 전업주부들이 느끼는 허전함 역시 ‘실존적 공허’에 해당한다. 즉,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 분명한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실은 이 상태가 아주 중요한 삶의 기점이 되는 상황이다. 이 의미는 지금부터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내면의 부르짖음이고 강한 요구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 자체는 인생 의미를 묻는 우리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인생은 오히려 우리에게 인생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함으로써 그 질문에 답한다.’라고 말하며 우리 스스로 삶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고통을 통해서 열반에 이른다고 한다. 즉 열반의 기반이 고통이다. 고통을 느낀 사람들만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하게 된다. 고통이 없다면 열반은 존재할 수 없다. 고통을 매 순간을 깨워주는 공부의 소재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번뇌 즉 보리 (煩惱 卽 菩提)이다.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실존적 공허’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공허감을 느끼면 그 공허감을 채울 수 있는 내용물을 찾아야 한다. ‘실존적 공허’가 ‘행복한 충만’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 타인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괴테의 다음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내 역할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까? 나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관찰하거나 명상해도 모릅니다! 당신이 인생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고 거기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아내세요. 당신 역할이 무엇이냐고요? 그날그날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이 당신 역할이에요”.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수동적으로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괜한 파랑새를 좇아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삶은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면 저절로 다음에 할 일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하루하루 충실히 살고, 시절 인연이 오면 내 눈앞에 할 일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일이 무엇인지 찾고 고민할 필요 없이, 오늘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시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이 진리를 알게 되면 굳이 힘들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거나, 할 일을 찾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 없이, 오히려 그 ‘시간과 에너지’를 지금 주어진 일을 창조적으로 할 수 있게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은 편하고,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고, ‘실존적 공허감’은 ‘행복한 충만감’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 천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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