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서 이 영화에 대한 짧은 평을 보고 어제 영화 관람을 하였습니다. 87세의 히데코 할머니와 90세의 슈이치 할아버지께서 살아가시는 아름다운 자연주의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구성한 영화입니다. 2년간 40분 분량의 테이프를 400개나 사용하여 촬영을 하였고, 그 기록들을 편집하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영화화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이 점점 더 건조해지고 자연과 멀어지는 안타까움의 반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 때문일 것입니다. 슈이치 씨는 “잃어버린 땅을 다시 산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한 후에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실행하여, 민둥산이던 뒷산이 지금은 울창한 숲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에게 ‘잃어버린 노년을 다시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내레이션이 진한 여운과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
인생의 희로애락은 모두 삶의 거름이 되고, 그런 거름은 아름답고 멋진 노년과 삶을 만들어 줍니다. 삶의 오르막 내리막을 통해서 우리는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사랑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기심과 쓸데없는 자존심의 날카로운 각을 무디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어떤 목표를 향해 가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고, 주어진 삶을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살아가며 인생의 다양한 후르츠의 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과정의 반복은 삶의 순환 과정이고, 삶과 죽음 역시 이런 순환 과정일 뿐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히데코가 남편인 슈이치를 통해서 배운 것을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걸 꾸준히 하다 보면 시간은 걸릴 테지만 무언가 보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삶은 바로 이것 외에는 더 이상도 이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며 다양한 후르츠의 맛을 느끼고 사는 것. 그 맛을 보기 위해 땅을 갈고, 거름을 주고, 물을 뿌려주는 것. 그렇게 살다 보면 삶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히데코 씨는 ‘외롭다기보다는 덧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운 것은 후르츠의 맛이고, 덧없는 것은 물의 맛입니다.
이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를 하는 닭살 부부입니다. 서로 존칭으로 부르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표현합니다. 각자 역할을 알아서 하고, 상대를 위한 언행만 합니다. 또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방목을 하는 듯하지만, 그 방목은 무책임한 방목이 아닌 존중의 배려입니다. 음식 하나 만들 때도 남편의 식성을 고려해서 만들고, 수저도 남편이 싫어하는 금속 재질을 사용하지 않고, 남편이 좋아하는 나무 재질을 준비합니다. 남편 역시 부인이 좋아하는 창호지 문을 만들고, 부인이 편하게 밭 일을 할 수 있도록 조그만 안내판을 만들어 주고, 떡메로 치댄 반죽 위에 부인의 이름이 각인된 낙인을 찍어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이 부부는 외롭게 사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습니다. 온 식구들이 모여 음식을 같이 만들고 나누기도 합니다. 신선한 식재료를 준비해 주시는 슈퍼마켓의 주인에게 감사의 그림엽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손주가 좋아하는 모형 집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재배한 과일 70종과 채소 50종을 가족들을 포함한 주위 분들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기도 합니다. 정원 수반에는 새들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작은 새를 위한 샘물’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감사한 분들의 이름을 곳곳에 새겨 놓기도 합니다. 비록 외부 활동이 많지는 않지만, 집안에서도 이분들은 끊임없이 자연, 동물, 사람 들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루에 두 번씩 갖는 두 분만의 오붓한 티타임은 가장 중요한 일과입니다.
이 외에도 책을 몇 권 발간하여 자연주의 삶의 소박함을 주위에 알리기도 하셨고, 대만에서 출판 기념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인과 함께 쓴 책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 이분들의 책을 읽지 못해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서 이분들은 사람 들과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슈이치 씨는 정신과 병원의 설계와 자문을 무료로 해 주시며 건축가로서의 삶을 멋지게 장식하셨습니다.
두 분의 삶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신체적, 심리적 자립의 원칙. 연금으로 생활을 하시기에 경제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의 원칙.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몸과 머리를 움직이는 활동의 원칙, 편의점 음식을 먹지 않고,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자연주의 섭생의 원칙,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지키지만 누구에도 강요를 하지 않는 상호 존중 및 자율의 원칙, 이런 자연주의 삶의 원칙을 깨지 않고 지키며 살아가는 고집스럽지만 유연한 삶의 원칙, 등등.
노년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미 치료 (logotherapy)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은 ‘삶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면 ‘실존적 공백’을 극복할 수 있고,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히데코 씨와 슈이치 씨는 자연주의를 삶의 원칙으로 하시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의 의미를 지키며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욕심내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나누는 삶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와 ‘의미 치료’는 제게 노년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제가 지금까지 고민해 온 내용들이 이런 방향성과 그다지 큰 간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꾸준히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습니다. 다양한 인생 후르츠를 맛보며 체득한 후르츠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