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꼭 .... 해야만 하는가?

by 걷고

요즘 사람들이 분노가 많이 쌓이고, 감정이 많이 격해져 있고, 표현이 많이 거칠어졌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하고 이웃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섭다. 어쩌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열등감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 본다. 사회의 변화로 인해 점점 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부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갖은 자는 더 갖거나 지키려고 하고 있고, 부족한 자는 더 갖거나 빼앗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모든 것을 꼭 갖고 이루고 성취해야만 할까? 일반적으로 사회의 성공 기준을 부귀, 명예, 권력이라고 한다. 꼭 그 세 가지를 모두, 아니면 하나라도 반드시 이뤄야만 할까? 그것을 모두 아니면 하나라도 성취한 사람은 정말로 행복할까? 그냥 평범한 서민으로 하루하루 가족들과 즐겁게 대화하고, 친구들 만나 떠들고, 차 한 잔, 영화 한 편 보고 살면 안 되는가? 주어진 그날의 일에 충실하게 살고,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말 한마디 나누고 살면 안 되는가?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다. 더 이상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매 순간 만나는 상황과 사람, 주어진 일에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살고 싶다. 아침에 밝은 해를 바라보고 웃을 수 있고, 불광천을 따라 마포중앙도서관까지 50분 걸어가면서 주변의 변화와 사람들을 보고 웃으며 살고 싶다.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 한껏 보고, 커피숍에서 차 한잔 마시고, 쓰고 싶은 글 쓰고, 여유롭게 걷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

우리는 꼭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아야만 할까? 조금 참고, 양보하고, 웬만한 일은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조금은 마음에 상처로 남더라도 인생의 훈장 정도로 생각할 수 없을까? 언젠가부터 자신의 주장을 하지 못하면 손해를 보는 바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사소한 일도 양보하지 않고, 조금도 지지 않으려 악을 쓰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강하게 밀어붙이고,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대충 넘어가고, 시비에 응하지 않고 들어주고, 굳이 내 주장 펼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다. 그래서 바보가 된다면 바보로 살고 싶다. 이 역시 열등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아직 열등감이 남아있지만, 그대로 안고 살고, 부족한 것 인정하고 살고 싶다. 그냥 조용히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살고 싶다.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빛을 외부로 향해 발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향해 발하는 뜻이다. 이제 외부의 판단이나 칭찬, 비난으로부터 바보처럼 자유로워지고, 거기에 소모될 에너지를 자신을 돌보고 성찰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

우리는 꼭 관계에서 우열을 나누고, 흔히 얘기하는 ‘갑질’을 하고 살아야만 할까? 부모와 자식, 선생과 제자, 상사와 부하, 고용인과 피고용인, 선배와 후배, 나이에 따른 서열 등이 필요할까? 이 가운데 ‘부모와 자식’ 관계를 제외하고는 일종의 계약된 관계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의미 없는 관계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관계가 종결된 이후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가며 원래 관계의 의미보다 더욱 성숙한 관계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소유하지 않는 사랑’ 관계를 만들고 살아가는 멋진 삶도 있다. 지위, 나이, 성별, 학력, 직업, 경제력 등을 떠나서 서로 똑같은 인간으로 동등하게 존중하며 살 수는 없을까?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다.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차별 없이 대하며,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대우를 받고 살고 싶다. 나를 버리는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마음속에 차별심이 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많은 노력이 수반되고, 쉽지 않고, 좌절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성숙해져 가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꼭 획일적인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으로 살아야만 할까? 좋은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 다니고, 좋은 배우자 만나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할까? 좀 더 나름대로의 개성을 유지하고 살면 안 될까? 산길을 걷는데 모든 나무가 똑같이 생기고, 돌 모양이 똑같고, 하늘색과 구름이 모양이 똑같고, 바람이 같은 방향으로 불고, 눈송이 모양이 똑같은 그런 세상에 살고 싶을까?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다.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나만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나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길은 찾은 것 같다. 상담, 명상, 걷기의 세 가지 축이 내 삶의 축이다. 크게 이 축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필요하면 과감히 다른 축을 만들고, 지금의 축을 버릴 수도 있다. 굳이 어디에 매여 살고 싶지 않다. 비록 그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고 하더라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든 열어놓고 살고 싶다.

우리는 꼭 얼굴과 몸을 젊게 만들거나 예쁘게 가꾸며 살아야만 할까? 요즘 TV에 나오는 젊은 연예인들을 보면 구별이 잘되지 않아 ‘얘가 쟤 같다.’ 몸과 얼굴을 잘 가꾼 분들은 연세보다 어리게 보이기도 하고, 얼굴에 어떤 조치를 취하여 주름이 없는 무표정한 웃음을 보며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냥 나이 든 채로 살면 안 될까? 얼굴에 잔주름이 깊게 잡히고, 아랫배도 조금 나오고, 흰머리도 제법 보이고, 머리숱이 조금 없기도 하고, 나이 든 만큼 신체 나이도 같이 들어가면 안 될까? 물론 건강은 중요하니 건강 관리를 게을리하자는 말은 아니다. 이제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굳이 나이 적게 먹어 보이려 하지 않고, 물론 지금까지고 별로 그런 적은 없지만, 그냥 내 나이에 맞게 내 모습 그대로 살고 싶다. 얼굴이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깊게 잡히고, 키도 조금 줄어들고, 머리숱도 줄어들고, 머리카락 색도 눈서리 맞은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싶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 모습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몸을 가족이나 어떤 타인에게 의탁하지 않고 살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걸으며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쓸 것이다.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열등감은 이제 친구가 되었다, 고혈압이 내 친구인 것처럼. 굳이 그 모습을 벗어나려 하거나,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고,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라고 인정하며 살고 싶다. 뚜렷한 목적이나 성취하고자 하는 의도 없이 그냥 주어진 매 순간에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살고 싶다. 이제는 굳이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하루하루 즐겁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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