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 서가를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온 책,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를 발견했다. 목차와 내용을 대충 훑어보니 불교의 4대 성지를 100일간 걸어서 순례했던 내용이다. 순간 예전에 신문을 스크랩해 놓았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 책을 빌려오자마자 바로 그 신문 자료를 뒤져서 찾아냈다. 2010년에 신문에 난 것을 오려두었고, 총 7회에 실었던 기사 중 4회의 기사는 신문을 오려놓았고, 나머지는 인터넷에서 찾아 출력을 해 놓은 자료이다. 이 책을 만난 인연이 이 자료로부터 시작된 느낌이 든다. 신문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걸어서 불교 성지순례를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책을 만나 그 생각이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8년 전 심어두었던 씨가 이제 발아를 시작한 것이다.
작년에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요즘 들어 어딘가 먼 길을 오랫동안 걷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국내 삼보사찰을 걸어서 순례를 할까? 히말라야 라운딩을 해 볼까? 해외 유명 트레킹 코스를 걸어 볼까? 등등. 어떤 분은 내게 라다크를 가보라고 추천해 주시기도 했다. 나는 등산가도 아니고, 탐험가도 아니고, 힘든 길을 찾아다니며 걷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걷기를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높은 산과 바위는 무서워서 가기 싫어하고, 오지 탐험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겁이 나서 시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신문을 오려서 보관하고 이 책을 꼭꼭 씹어먹듯이 읽었던 이유는 아마 언젠가는 이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속 깊은 곳의 갈망 때문일 것이다. 산티아고 길은 걷기에 너무나 좋은 길이었다. 그 길은 내게 순례길이 아닌 그냥 걷기 좋은 길이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 문화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기에 그냥 걷는 것에 집중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근데 뭔가 아쉬움이 조금 남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약 2,500년 전으로 돌아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부처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니까야’라는 초기경전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말로 시작이 된다. 부처님의 조카인 아난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암송한 내용을 글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걸으며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싶고, 그분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왜 출가를 했으며, 어떻게 수행을 하였고, 어디에서 어떤 법문을 하셨는지, 그분의 일생을 그분과 함께 걷고 머물며 그분을 만나고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부처님의 출가에는 어머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부처님 탄생 후 일주일 만에 부처님의 어머니이신 마야부인은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 어머니의 죽음은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삶의 근본적인 고통인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들었을 것이다. 룸비니에서 태어나신 부처님은 아들을 낳은 후에 출가를 한다. 아들의 이름이 장애라는 뜻을 가진 ‘라훌라’로 정한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출가에 장애가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고, 사르나트에서 초전법륜을 설파하시고,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신다. 이 네 곳이 불교의 4대 성지이다. 나는 그 길을 이 책의 저자처럼 걸어서 순례하고 싶다.
쿠시나가라는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 바스투를 불과 100km 남겨둔 지점이다. 몸을 지닌 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모든 목숨을 지닌 생명체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일 것이다. 결국 부처님도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심을 통해서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였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 죽음은 생로병사를 뛰어넘은 죽음이기에 이미 같은 죽음이 아니다.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성도를 이루셨고, 춘다의 공양을 받고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네 곳을 순례하며 내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다시 만나 내 가르침을 따르는 것에 다름없다. 나는 늘 거기에 있을 것이다. 거기서 그대들을 기다리리라.’ 2,500년 전에 태어나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신 부처님께서는 이제 나를 그 길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나는 그분을 만나러 가고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분의 모습, 목소리, 그 당시의 법회 분위기,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그 길을 걸어서 가고 싶다. 신문이 씨가 되고, 책이 꽃을 피웠다. 이제 열매를 맺기 위해 나는 길을 떠나야 한다.
저자는 1,500km에 달하는 이 길을 부처님의 족적을 따라 100일간 걸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거울을 보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가기 전의 모습은 ‘산은 산이다’였다.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은 ‘산은 산이 아니다’였다. 몇 개월 후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산은 산이다’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그 산은 예전의 산이 아니다.
이 책을 쓰신 저자를 만나고 싶어서 출판사에 연락을 했더니, 오래전에 발간된 책이고, 그 저자의 연락처를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언젠가는 저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저자와의 만남은 내가 열매를 맺는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