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 마치고 집 도착 후 어떤 길로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과 2년 전에는 같은 검진을 마쳤는데 마취했다는 느낌조차 없었지만 금년에는 다르다. 병원에서 동반자 대동이나 운전을 못하게 하는 이유를 금년 건강 검진을 받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그만큼 몸이 노화된 것이다. 2년 전에 비해 2년이라는 세월만큼 노화가 진행된 것이다. 노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흔히 anti-aging이라는 단어를 쓰며 노화를 연장한다고 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가끔은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오늘 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검진센터에서 또는 휴대전화 가게에서 직원이 얘기하는 것을 알아듣기 힘들고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게 된다. 그런 확인이 불편한 듯 직원들 태도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노인네가 말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할만하다. 나는 나의 속도와 이해력으로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싶고, 원하는 대로 맞춰주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답답하다. 서로 답답한 상태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웃고 넘기고. 미안한 척하며 다시 물어본다. 다시 들어도 워낙 말의 속도가 빠르니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느냐고 다시 한번 확인한다. 상대방에게는 이 역시 업무 처리 속도의 지연 요소가 되니 당연히 친절할 수가 없다. 또다시 한번 그러려니 하며 겸연쩍은 노인네 웃음을 짓는다.
피아니스트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연습벌레였지만, 그 역시 노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건반을 두드리는 속도가 예전과 다르게 늦어지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전반적인 곡의 속도를 늦추며 연주를 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관객들이 그의 연주 속도가 늦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곡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건반 두드리는 속도가 늦어졌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인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의 꾸준한 노력과 성숙한 연주가 속도를 잊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나이, 노화, 상황에 맞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절하며 연주자로서의 생명을 이어간다.
사회생활할 때에는 기상 후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분 남짓이었다. 이제는 한 시간 이상 걸린다. 동작이 많이 느려졌다. 행동이 늦어지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예전보다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멀티 기능이 가능한 효율적인 인간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다기능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어떤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대충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니 이 대충 하는 동시다발적 행동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가능하면 천천히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하니 하고 있는 일을 예전보다 더 많이 알아차릴 수 있고, 그 하고자 하는 일이 불필요할 경우에는 알아차림 덕분에 쓸데없는 행동을 또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나이 들어감의 좋은 면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고, 그만큼 생활은 단순해진다는 뜻이다. 나이에 맞춰 살아가는 지혜를 나이 들어가며 배우고 깨닫게 된다.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