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빨리 지나간다. 나이 먹는 만큼 세월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난 것 같은데, 따져보니 2, 3년이 훌쩍 지나가서 놀란 적이 있다. 가족여행 다녀온 사진을 보며 벌써 몇 년이 흘렀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도 있다. 세월이 나이 든 사람들한테만 빨리 지나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단기 기억력 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의 흐름과 나이 듦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니, 흐르는 세월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비록 세월이 쏜살같이 빠르다 하더라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동작이 느려졌으니 조금 서둘러
할 일을 시작하고 천천히 하면 된다. 이왕이면 지금 하는 행위를 의식하고 알아차리면 더욱 좋다. 말하는 속도도 굳이 빠를 필요가 없다. 자신만의 속도로 편안하게 말하면 된다. 말을 빠르게 하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미처 모른 채 말할 수도 있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일이다.
요즘은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듣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각자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시비를 따지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피력한다. 그 옳음이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자기주장의 이면에는 이기심과 명예심, 그리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욕심이 숨어 있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야만 할까?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빈약해진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다. 그러니 핏대를 세워가며 자신이 옳다고, 자기주장이 맞다고, 자신의 이론이 정확하다고 떠들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이런 시비의 주제는 별 의미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나이 들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미 충분히 말하지 않았는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했을 것이다.
기상 시간도 일정치 않다. 예전에는 가능하면 시간을 정해서 일어났다.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나의 생체 리듬이 나의 시간이 된다. 피곤하면 자고, 몸이 가뿐하면 움직인다. 특별히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 그것도 싫다면 안 하면 된다. 해도 안 해도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으니 이 또한 자유로움이다.
아침마다 명상하려고 하지만, 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냥 하루를 편안하고 무탈하게 지내면 된다. 물론 수행자의 자세는 아니다. 나는 수행자가 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가족,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옆집 아저씨가 되고 싶다. 그럼에도 매일 명상하는 한 시간을 통해 나의 마음을 살펴볼 수는 있기에, 가능하면 이 습관은 유지하고 싶다. 가끔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몸이 피곤할 때는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TV만 보는 TV 좀비가 된다. 이 좀비는 없애야 할 나쁜 습관이다. 유지할 것은 유지하고, 없앨 것은 없애는 것이 지혜로운 노인 생활을 위한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