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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를 기대하며

by 걷고

안나푸르나 전지훈련 2회 차로 북한산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찾은 대남문 코스. 내게는 많은 추억을 담고 있는 코스다. 한 해에 100번 이상 오른 길이다. 이 산을 1년에 100번 이상 오르면 원하는 일이 모두 성취된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의 타당성을 떠나 믿고 싶었다. 그래서 주 2, 3회씩 이 산을 올랐다. 그때 오를 때는 꽤 힘들었다. 흔히 얘기하는 깔딱 고개에 빨리 오르기 위해 애쓰며 올랐던 기억이 있고, 그 애씀 때문에 더 힘이 들었다. 그냥 천천히 오르면 편안하고 쉽게 오를 수 있었는데, 빨리 올라 쉬고 싶었다. 그래서 더 힘이 들었다. 그 이면에는 힘든 상황이 빨리 해결되고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는 목적과 욕심이 있었다. 그 목적과 욕심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길벗과 함께 오르며 너무 편안하고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산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있다. 다만 산을 오르고 대하는 나의 모습에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예전에는 목적과 욕심이, 이번에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이 있었다. 세상살이 마찬가지다. 힘든 이유는 힘들게 만든 자신의 책임이고. 편안한 마음은 편안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한 덕분이다. 상황 자체가 우리를 힘들거나 편안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다만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를 힘들거나 편안하게 만들 뿐이다.


왼발에 문제가 생겼다. 서너 달 이상 증상을 느꼈고, 그 증상을 무시하며 지냈다. 그 결과 이번 산행을 하는 내내 발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발에 물집이 잡히거나 파스를 붙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양말을 바꾸고, 등산화를 바꾸고, 깔창을 사용하며 걷는데, 그 자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통증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발에 무리가 생겨 통증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간 발이 잘 버텨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길벗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남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나와 남과의 경계가 무너져야 가능하거나, 아니면 나 역시 같은 고통을 느껴야만 공감을 할 수 있다. 이제야 나의 통증을 통해 길벗의 통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간 길벗의 통증을 이해 못 해 미안한 마음도 든다.


재활의학과에 가서 진단과 치료를 받았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아주 오래전에 다친 엄지발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이다. 발가락을 다쳤을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무식하게 버티며 몸이 견뎌주기를 바랐고, 결국 몸은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록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지만, 발가락은 온몸에 자신의 고통을 알려주고 있었다. 발가락의 주인인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리석은 주인이다. 그리고 마침내 발가락은 발바닥으로 통증을 확대하며 다시 주인인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어리석고 둔한 주인이 이제야 병원에 가서 통증을 치료한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통증은 완쾌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만 깔창을 이용해 엄지발가락의 통증을 분산시키며 걸어야만 된다는 사실을. 그간 깔창을 무시하며 걸었다. 누가 깔창을 깔면 이상하게 보았지만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고수이고 전문가이고 현명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늦었지만, 이제 깔창을 깔고 걸어야만 한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지금부터 신경 써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비록 늦은 약속이지만, 발가락이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안나푸르나 전지훈련을 하며 길벗의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이 우리 모두 안전하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13명이 한 줄로 걷는 모습과 서로를 아끼고 챙겨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길을 걸으며 나의 고통을 통해 길벗의 고통을 이해하듯, 길벗이 베풀어준 배려와 사랑을 통해 이를 배우게 된다. 대남문은 늘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맞이한다. 세월이 변하고, 날씨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대남문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뢰와 안정감을 배우고, 사회에서 또 친구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하며 살아간다.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기는 안나푸르나를 처음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떤 편견이나 상상 없이 그냥 편안하게 마주하면 안나푸르나 역시 우리를 그렇게 맞이할 것이다. 다만 몸 관리를 잘해서 몸으로 인한 불편함으로 안나푸르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산은 아무 잘못도, 편견도, 차별도 없다. 다만 산을 대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쓸데없고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을 만들어 낼 뿐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며 몸과 마음이 쓸데없는 장난에 놀아나지 않고 자연의 일부인 자신과 자연의 합일을 이루길 마음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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