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없음

by 걷고

“동생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는데, 여자 아이들은 말도 잘 듣고 조용히 노는데 남자아이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것저것 부수고 다녀서 힘들었고 속상했어.”

“네 말을 듣지 않아서 속상했구나.”

“응”

“그럼 엄마, 아빠는 네가 말을 듣지 않아서 그동안 얼마나 많이 속상했을까?”

“할 말 없음”


손녀와 어제 나눈 대화다. 이제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손녀 보윤이가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대견스럽고 사랑스럽다. 게다가 내 말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고맙고 자랑스럽다. 아이는 솔직하다. 자신의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얘기하고, 남의 얘기를 들을 줄도 안다. 우리가 아이들을 통해서 배울 점이 참 많다. 아이는 자신의 속상함을 얘기함으로써, 또 우리가 그 얘기를 어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줌으로써 아이의 불편한 감정은 편안하게 정리되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 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듣고 해석하느라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한다. 한 사람의 말을 들으며 각자 생각하고 느끼는 점이 다르다. 그러면서 공감이란 말을 너무 쉽게 자주 말하고 자신은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감을 제대로 하기는 무척 어렵다. 공감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있듯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되, 그 마음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판단, 해석, 경험, 조언, 충고 등은 이미 자신의 주관적 의견이 반영된 내용이므로 이는 공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말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감정만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말을 들을 때에는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한다. 비록 그 말이 거짓이라도 거짓을 알면서도 그대로 들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거짓에 매몰되지 않고, 그냥 듣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게 된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말을 들으면 그가 원하는 말이나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읽은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불편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어제 내가 손녀와 나눈 대화가 그렇다. 손녀의 불편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었고, 손녀는 그 말을 잘 알아들었다.


손녀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고, 또한 동생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듯이 동생과 즐겁게 놀았다. 이미 지난 과거는 흘러가 버렸다. 과거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함으로써 과거에서 벗어나 지금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아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할 말 없음”이라는 깔끔한 표현에 나 역시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 역시 “할 말 없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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