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관람한 영화 제목이다. 세 가족의 얘기를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 딸과 아들이 홀로 힘들게 살고 있는 파더를 찾아가서 잠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온다. 자식들에게 파더는 짐이다. 유명 작가이며 부유한 환경에 살고 있는 마더를 자매가 찾아간다. 자매의 경제상황은 녹녹지 않다. 마더에게 자식은 짐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부모가 살았던 빈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 추억을 곱씹는 쌍둥이 남매가 부모의 짐을 보관한 임대 창고에 가서 짐을 보고 돌아온다. 돌아가신 부모의 짐이 이들에게는 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스스로 내린 한 마디 영화평이 ‘짐’이라는 사실이 짐스럽다 그만큼 내게는 삶이 짐으로 느껴졌나 보다. 이 세 가족 모두 서로에게 짐이 되지만 그 짐 안에 사랑과 추억이 살아있다. 그러니 짐은 사랑이고 추억이다. 짐과 사랑 중 어느 곳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고, 축제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본 후 ‘짐’이 느껴진 나로서는 삶이 그만큼 무거운 짐이었나 보다. 지금은 어떤가? ‘길’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삶이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짐’이 ‘짐’이 아니다. ‘짐’은 오히려 나의 ‘길’을 찾게 만들어 준 고마운 스승이자 친구다.
영화를 보며 과연 나는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짐이 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짐이었고, 짐이다. 반면 누군가의 짐을 덜어준 적도 있었을 것이다. 짐이 되지 않고 가볍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치 스님들이 운수행각 하듯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삶의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상황을 비판단적으로 관찰하고 흘려보내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우선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심,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심,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등을 내려놓아야 한다. 마음이 가벼우면 삶이 가벼워진다.
집 안에 짐이 많이 있다. 책, 옷, 등산 관련 용품 등이 많다. 그중 1년에 단 한 번도 사용한 적도 없는 물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버리지 못한다. 가볍게 살려면 물건을 버려야 한다.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한다. 불필요한 물건은 나눠주거나 버리면 되는 데 이것이 쉽지 않다. 늘 움켜쥐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손바닥을 펼쳐야 그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을 수 있다. 움켜쥐는 마음은 몸에 긴장을 불러오고 욕심을 불러온다. 펼치는 마음은 몸을 이완시키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제는 무언가를 채우기보다 버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버리는 작업을 하며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살고 싶다.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 하고, 시간에 치이지 않게 살아가고, 주변 사람과 잘 어울리며 살아가면 된다. 그간 만든 동반자가 있다. 걷기와 글쓰기다. 이 친구와 시간을 잘 보내면 된다. 또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라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 ‘나’를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동반자 한 명이 더 있다.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나를 비워나갈 수 있다. 세 명의 동반자가 끝까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마음 터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서너 명의 친구가 있다. 더 이상 친구를 만들기보다 이들과 좋은 인연을 잘 이어가면 된다.
글을 쓰다 보니 결국 욕심으로 귀결된다. 삶의 짐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나’라는 욕심, ‘물건’이라는 욕심, ‘명예나 성공’이라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 ‘나’는 아상이다. ‘물건’은 살아가면서 굳이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다. ‘명예나 성공’은 자신보다 남을 의식한 산물이다. 모두 필요 없는 것들인데, 모두 이것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 어리석은 중생의 삶이다. 영화는 내게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다. 좋은 영화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