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목과 장인 (匠人)

by 걷고

https://youtu.be/AE2mXG3T1To

60여 년간의 삶이 약 30분 정도 분량의 동영상에 모두 담겨있다. 참 인생 별거 없다. 무엇을 이루려고, 어떤 삶을 살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부딪치며 살아왔는지. 그런 모습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난다. 한때는 중요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 돌이켜보니 별거 아니었다. 그냥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름 한 조각에 불과했다. 그런 뜬구름을 잡거나 피하려고 동분서주하며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가엾은 중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마지막 동영상을 보며 갑자기 삶을 지켜준 버팀목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삶의 과정에서 즐거운 순간들보다는 힘들었던 순간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런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준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열등감이었다. 별로 잘할 줄 아는 것도 없이 아주 평범하고 조용하게 한구석에서 마치 투명 인간처럼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도 잘 못했고, 운동도 잘 못했으며, 가정도 그다지 편안한 환경이 되지 못했고, 삼류대학에 입학했다. 그런 환경이 늘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열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극복하겠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고, 그냥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왔다. 대학생이 된 후에 괜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열등감을 포장한 과도한 자존심을 표현하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열등감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열등감을 들키는 것이 싫어서 억지로 ‘나 자신’의 삶이 아닌 ‘가짜 자신’의 탈을 쓰고 살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열등감이 싫어서 그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던 노력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과정에 ‘영어’가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영어회화 서클에 다니면서 영어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서클 회장을 맡기도 하였고, 미국 공보원 주최 영어 웅변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유일하게 남 보다 조금 더 잘할 줄 아는 것을 발견하였고, 생애 처음으로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신라호텔도 영어 특채로 입사를 하였고, 영어 덕분에 외국계 회사에 입사할 수도 있었다. 퇴사 후 외국계 기업 사무실 인테리어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영어가 가능해서였다. 지금도 헤드헌팅 업무를 외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도, 예전보다는 그 실력이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해서이다. 영어는 삶의 기본인 경제적 수입의 원천이었다.


불교는 아픈 마음을 다스리고 지친 심신을 쉬게 해 주는 ‘심신 건강 병원’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힘들 때마다 사찰을 찾아갔다. 조용히 법당에 앉아있으면 너무나 편안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휴가를 대부분 사찰에서 혼자 조용히 보내기도 하였고, 삶의 힘든 시간에 도피처로 사찰을 택하기도 하였다.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참선 수행, 정근 수행, 절 수행, 독경 등 다양한 수행을 하였다. ‘수행’을 하였다기보다는 ‘하는 척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다운 수행이 아닌 겉으로만 ‘하는 척’하는 모습에 불과했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서 올바른 수행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였으니 ‘척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정이었다. 불교는 삶의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심한 갈증으로 고통받을 때, 그 고통을 달래 줄 달콤한 한 줄기 감로수였다.


가정은 상처의 근원이며 동시에 회복의 근원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양육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그 환경이 삶의 전체를 거의 다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게 결혼 전 가정은 그냥 집에 불과하였다. 물론 부모님 덕분에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밥을 굶지 않고, 몸을 쉴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었으니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편안하지 않았던 가정환경으로 인해 가정이 무엇인지 또 가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한 후, 아내를 만나며 가정의 중요성과 가장의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늘 흔들리지 않고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 등을 충실하게 해 주었다. 그런 모습을 통해 가정을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아내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아 나도 서서히 가장의 기준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가정에서 만들어진 상처는 가정에서 회복될 수 있다. 아내의 일관성이 나의 불안을 달래 주었고 회복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가정과 아내의 버팀목이 되어줄 때이다.


열등감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 원동력에 힘을 실어준 것이 영어였다. 또한 불교는 마음의 휴식처여서 지칠 때마다 힘을 되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 세 가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아내가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나’가 만들어졌다. 그런 삶을 통해서 ‘견딤’을 배울 수 있었다. 어떤 역경과 고난이 있어도 그것들을 피하거나 감추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직면을 하고 견디게 되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저절로 해결이 된다. 직면과 수용은 좋고 싫음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주어진 그 순간의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마치 달팽이와 같다. 달팽이는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집을 몸에 올리고 살아간다. 우리 모두 각자 삶의 무게를 각자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고통의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근육이 생성되면 그만큼 삶의 무게는 적게 느껴진다. 삶은 무게가 전혀 없을 수 없다. 그런 모습은 마치 껍데기 없는 달팽이와 같다. 삶의 무게는 희로애락이다. 마음 근육은 고통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삶의 지혜이다. 삶의 희로애락은 아름다운 삶의 진주를 만들어 주기 위한 선물이다.


보왕삼매론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라.” 근심과 곤란은 행복의 길로 이끌어 주는 신이 내린 귀중한 선물이다. 삶의 역경이 우리를 버티게 만들어 주고, 그 버팀목이 우리를 삶의 장인(匠人)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만사에 고마워하는 일 밖에는 없다. 이 진리를 알기 위해 그렇게 살아왔구나. 수고했다, 휘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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