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기 vs 안 하기

by 걷고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상황에 처해있거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뭔가를 더 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심리적인 불안감과 불편함을 인내하며 그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좋을까?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건강식품을 챙겨 먹거나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몸에 좋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을 때, 약을 먹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속을 비우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


얼만 전에 예방의학 전문의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혈압을 낮출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을 듣고 싶었다. 그분은 즉답은 피하면서, 자신은 몸에 나쁜 음식은 삼가고 몸에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잠을 일찍 자고, 소식을 하며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업무량을 줄이기도 한다고 하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느껴질 수도 있고, 동시에 ‘세상살이 어려움을 모르는 철없는 사람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분도 심각한 고민 끝에 중요한 선택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의사를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살겠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분의 말씀이 늘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상담심리사로 살기로 결정을 하였지만, 상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중소기업 임직원들의 심리적 건강을 지원하기 위한 근로복지공단 EAP 상담과 사회통합치유센터 마음 복지관에서 상담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 상담 활동의 전부이다. 상담 센터 한 곳에서 고정적으로 상담을 하고 싶은데,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 그 외에 가끔 들어오는 강의나 헤드헌팅 업무를 하며 지내고 있다. 과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죽을 때까지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회에 작은 봉사라도 하며 살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이미 포기했고 주어진 일을 하며 주어진 보상에 만족하기로 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시도하려고 계획을 세운 적도 있었다.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걷기 학교’ 설립, 퇴직자들의 인생 이모작 준비를 위한 ‘퇴직자 학교’ 설립, 글을 좀 더 열심히 써서 작가 되기, 노숙인들을 위한 상담 센터 및 봉사 단체 설립 등. 왜 그런 일을 하고 싶은지 마음속을 들여다봤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 이름을 알리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명예욕이었다. 그분들을 위해 순수하게 봉사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런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이기심에 불과하였다. 양의 탈을 쓴 여우, 바로 그 자체였다.


요즘은 상담을 포함하여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자발적으로 내려놓았다기보다는 내려놓게끔 만든 상황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결정의 과정이 자신의 결정이 아닌 상황에 의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삶이다’라는 말을 우연히 방송에서 듣고 위안을 받으며 작은 통찰이 일어났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이미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이 결정을 하든, 자신이 결정을 하든, 그 모든 것은 이미 나 자신이다.


우리의 삶은 이미 태어난 순간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 생후 10개월 된 손녀는 그 순간 필요한 것만 있으며 더 이상 요구하지도 않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 순간을 사는 손녀를 보며 많은 것을 쥐고 이루려고 하는 욕심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영화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저녁노을을 보며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데, 왜 그렇게 욕심을 내고 살았는지’라고 얘기하며 죽는 장면을 보았다. 죽음의 순간에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만약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 수 있다면, 매 순간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잘 살기 위해, 등등 많은 이유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랫동안 고민 속에 살아왔다. 순간을 살지 못했기에, 고민한 시간만큼 나의 삶은 사라져 버렸다. 삶은 찾는 것이 아니고 순간을 사는 것이다. 어두컴컴한 삶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앞도 보이지 않아 엎어지고 다치고 했지만, 이제 조금씩 어둠이 걷히고 있다. 손전등이 비치는 범위의 공간만큼만 앞으로 가면 된다. 그 너머를 미리 걱정하거나 빨리 가려고 할 필요가 없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순간을 사는 방법이다. 뭔가를 더 하려는 삶이 아닌 이 순간을 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삶이고 자신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삶 전체의 여행이 궁극적으로는 지금 이 순간에 내딛는 발걸음으로 이루어짐을 깨닫는 일입니다. 언제나 이 한 걸음만이 존재하며, 따라서 당신은 그것에 완전히 관심을 기울입니다. 미래가 당신을 위해 보관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지금의 의식 상태에 달려있습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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