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재] [오전 10:57] https://youtu.be/gQPlfVXxBCE
어제 딸이 손녀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집 도착 몇 분 전부터 아내와 나는 지하 주차장에서 딸과 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주차장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생각보다 늦어지니 걱정되기 시작한다. 혹시나 자동차 사고가 나지는 않았는지.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그 불안한 마음을 아내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어쩌면 아내도 나와 같은 불안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보다는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니.
딸이 운전하고 손녀를 데리고 오는 모습이 좋으면서도 괜히 안쓰럽다. 하루종일 애를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위가 출장을 가서 친정에 놀러 온 것이다. 늘 느끼지만 딸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하다. 자기들끼리 나름 잘 살고 있는데도 그런 느낌이 든다. 세상을 살아보니 결코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딸이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욕심일 수는 있으나, 여전히 안쓰럽고 짠하다. 부모 마음에 자식은 늘 안쓰럽기만 하다.
사위가 귀한 중국 명주를 이번에도 딸을 통해서 보내왔다. 지난 번에도귀한 중국 술을 보내와서 의미 있는 자리에서 사위 자랑을 하며 맛있게 마셨고, 사위에게 고마움을 전했었다. 아내는 이번 술은 사위와 같이 마시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사위에게 문자로 감사함을 표시하며 같이 마시자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사랑한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애초 문자를 보내려 할 때에는 그런 표현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문자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표현이 나왔다. 조금 손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이라 그대로 보냈다. 사위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사위를 보면서 장인 어른이 떠오른다. 우리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하셨던 분이 결혼한 후에는 한마디도 싫은 표현이나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 사위의 여러 모습을 보며 불편하게느꼈던 일들이 있었다. 장인 어른이 떠올라 불편함을 표현하는 대신 만나면 무조건 안아주었다. 장인 어른이 나를 보고 느끼셨던 점이나, 내가 우리 사위를 보고 느꼈던 점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랑으로 안고 가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식들에게, 어른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예의이다.
아내는 나와 35년을 같이 살아왔다. 아내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나 역시 가끔은 아내에 대한 불만을 느끼기도 하였다. 결혼 후 아내가 20년 이상 참고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고의 세월이 나를 가장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아내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고맙다. 지금은 둘이 거의 말다툼도 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 말다툼을 하기는 하지만, 금방 끝나고 풀린다. 우리 삶의 양념 같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 말다툼이 오히려 정겹다.
힘든 역경을 같이 견디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상호 의지하면서 건강한 가족관계가 형성된다. 살아 보니 ‘견디는 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이 하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바꾸려는 노력보다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키거나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시간을 기다리면 어느 순간 갈등이 사라진다. 문제는 상대방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의 내면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나의 모습을 잘 바라보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평가를 멈추면 갈등은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사라진다.
가족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다른 모습을 견디고 지지하고 사랑하며 기다리는 태도이다. 상담에서도 내담자의 힘든 모습에 끌려가지 않고, 상담자가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버텨줄 때, 내담자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가족간의 관계도 이와 같다. 사람간의 관계는모두 같을 것이다.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내려놓고, 다름을 인정하고, 사랑을 바탕으로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 이것이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는 비결일 것이다.
사위가 3월에 가족 여행을 같이 가자는 연락이 며칠 전에 왔다. 홀로 계신 장모님이 생각이 나서 장모님을 모시고 같이 갈 생각이다. 나중에 아내가 홀로 되었을 때, 우리 사위가 자기 장모를 모시고 다닌다면 너무나 고마울 것 같다. 본의 아니게 나의 모습을 통해 사위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말 없는 모습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 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동영상이 올라왔다. 그 동영상을 보면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 고마움을 ‘가족’이라는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고맙고 미안한 아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