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에 초대받은 첫 번째 영화가 ‘우상’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이 영화에 관한 얘기를 여러 번 듣고 읽었다. 묵직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라서 기대를 하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같이 관람한 선배에게 제일 처음 한 말이,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겠다, 글을 써야 하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였다. 많이 혼란스럽고 내용 파악도 되지 않으며, 또한 대사도 잘 들리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국산 영화를 보면서 자막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낀 영화였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다른 사람들의 평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별로 신통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우상’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 쇠붙이, 돌, 흙 따위로 만들어 인간이 숭배하는 상’이다. 아무것도 아닌 주변의 물건에 비합리적인 신념을 갖거나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성을 만들어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우상이다. 우상에 미친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무모함도 망설이지 않는다.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우상’일까? 이 영화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제목과 내용이 도저히 연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하루 동안 영화 내용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문득문득 섬찟한 장면이 떠올라 소름이 돋기도 했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무서움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욕망이 떠올랐다. 그 욕망은 무지가 만들어 낸 것이다. 허상을 만들어 실제로 믿고 살면서 나중에는 허상과 실제가 뒤바뀌기도 하거나, 아니면 실제는 사라지고 허상만이 실제의 모습으로 남기도 한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한다. 겉으로 나타난 사실은 진실과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진실은 변하지 않는 영구불변의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사실은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고, 변한 것을 사실이나 거짓된 진실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영화에 나오는 ‘드라마’라는 대사는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영화 속 구명회 (한석규 분)는 올바른 정치인 이미지를 포장된 진실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구명회에게 우상은 ‘권력욕과 명예욕’이다. 권력과 명예는 영원하지 않다. 명예욕은 종족 유지의 본능인 성욕보다 더 내려놓기가 어렵다고 한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변하게 되어있다. 권세는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처럼. 그런 무상한 권력이라는 허상이 만들어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아들에게 자수를 권하고, 사체를 유기하고,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최련화(천우희 분)를 찾아 입을 다물게 하려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권력이라는 우상이 부모나 자식보다도 우선이고, 모든 사람이나 상황들은 우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유중식(설경구 분)에게 우상은 ‘종족의 보존’이다. 임신한 며느리인 최련화를 찾아내어 살리려고 목숨 걸고 매달리는 이유이다. 최련화 뱃속의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도 모르면서 며느리와 혼인신고까지 해가며 자신의 자식으로 만들어서라도 가족의 뿌리를 유지시키려 한다. 그것이 그토록 사랑했던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이 중요하다. 며느리 뱃속의 아이는 죽은 아들의 아이라는 잘못된 사실이 그에게는 진실로 각인되어 있다. 최련화는 자손을 영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유중식에게 최련화의 목숨은 ‘종족의 보존’과 같은 의미이다. 우상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진실과 사실 사이의 분별 능력을 앗아간다.
최련화에게 우상은 ‘생존’이다. 살기 위해 한국으로 온 조선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생존을 가로막는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이나 환경도 그녀의 생존을 방해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 우상인 ‘생존’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도구이고 신념이다.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한다.
유중식은 최련화를 살리기 위해,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구명회에게 마지못해 도움을 청하고 손을 잡는다. 구명회는 자신의 아들이 죽인 아들의 아버지를 도지사 선거에서 도구로 활용한다. 유중식과 구명회는 화해와 용서의 악수를 한다. 그 악수는 과연 사실과 진실, 어느 쪽일까? 그 경계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우상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경계선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최련화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유중식과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킨다. 세 사람은 각자의 우상을 위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우상을 지키기 위해 남의 우상을 무시하고 짓밟으려 하지만, 결국 그런 욕심으로 인해 자신의 우상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마치 세 마리의 뱀이 서로 꼬리를 물고 생존을 위해 남의 꼬리를 물어뜯는 형상이다.
세 명은 각자 다른 우상을 갖고 있지만, 그 뿌리는 모두 같다.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고, 살아야만 되는 유일한 이유, 바로 우상이고 그 우상의 뿌리는 욕망이다. 우리의 무지가 욕망을 만들어내고, 욕망이 우상을 만들어낸다. 또한 욕망은 진실을 볼 수 있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구명회가 화상 입은 얼굴과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같은 언어로 연설을 하고, 대중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우상이 만들어 낸 허상을 대중은 실제로 보고, 사실을 진실로 본다.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 허구로 구성된 드라마 속에서 대중은 우상을 만들어내고 울고 웃고 살고 있으며, 속이고 속임을 당하며 살고 있다. 금강경 사구게 (金剛經 四句偈)가 생각난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견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나니, 모든 형상이 실제가 없다고 보면 곧 진리를 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