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四季)를 걷다

by 걷고

지난 토요일 하루를 걸으며 사계를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햇빛, 바람, 눈, 우박, 비, 맑은 하늘, 먹구름 등, 사계에 걸쳐 경험할 수 있는 날씨를 모두 맞이했습니다. 그런 날씨의 변덕이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의 변화처럼 느껴져서 걷는 내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변화는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날씨의 변화는 자연의 생생함과 활기참을 보여 주었고, 그런 날씨 속에서 우리는 연신 우산을 폈다 접었다,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때로는 비와 우박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연의 선물을 만끽하며 걸었습니다. 그런 생동감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었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내내 웃고 떠들며 자연의 변화에 맞춰 함께 장단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변화, 갓 피어난 개나리와 매화, 꽃피기 전의 몽우리 상태로 시기를 기다리는 벚꽃은 우리에게 다시 이 길을 찾게끔 갈증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 날씨와 계절의 변화와 그런 변화를 만끽하고 있는 활기찬 사람의 자연스러운 조화로움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어제 날씨는 우리네 인생과 같았습니다. 날씨의 변화는 우리네 인생의 부침과 같습니다. 힘들 날을 지나면 멋진 날이 오고, 그 이후에는 다시 힘든 날이 옵니다. 그런 변화무쌍한 인생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부침을 인생의 과정으로 깨닫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체득하고 있습니다. 어떤 날씨도 우리가 선택할 수 없고 받아들이듯이, 인생의 어떤 희로애락도 우리가 선택할 수 없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같은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고, 불행하다고 힘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로우리는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변화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행복의 열쇠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과 사람은 붙잡고 싶어 하고, 싫은 일과 사람은 멀리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일과 사람은 우리가 선택하기보다는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을 거부하려 하면 할수록 우리의 고통은 그 크기가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벽에 탄력이 강한 공을 던지면, 탄력의 크기만큼 튀어나오듯이. 하지만, 스펀지처럼 받아들인다면, 공은 튀어나오지 않고, 공의 탄력을 흡수하게 됩니다. 스펀지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고, 공의 탄력을 흡수하며 태평스럽게 공을 받아들입니다. 삶의 과정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지혜를 배우게 되고, 기다림의 지혜를 채득 하게 되며, 서서히 마음속에 평온을 되찾게 됩니다.


길을 걸으며, 삶을 살아가며 다른 분들의 삶과 마주치게 됩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때로는 보기 싫은 미움으로, 때로는 담담한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과의 화합도, 같은 분들과의 불화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틀을 부수고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언행의 잘못으로 그 언행 자체를 미워할 수는 있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아니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삶의 교훈을 배우기도 합니다. 다양한 날씨가 제게 가르쳐 준 소중한 삶의 철칙입니다.


어떤 날씨 속에서도 걷듯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삶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 맞이하는 고통의 순간과 어려운 환경들은 그냥 지나갈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시끄러움에 마음 두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각자 할 일에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우리기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것 이유일 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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