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머물기 시작한 지 삼 개월이 거의 다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몇 주간은 우리 집에서 아내와 나와 함께 세 명이 함께 지냈다. 아내나 나 둘 중 한 명은 장모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장모님이 오시기 전에 아내는 매주 사나흘 간 딸네 머물며 딸의 일손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다 장모님께서 고관절 수술 하시고 회복차 우리 집에 오신 후 딸네 가는 것을 그만두고 장모님 간병에 온 정성과 힘을 쏟았다. 늘 둘이 지내던 집안에 장모님이 함께 머물게 되니 다소 정신이 없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함께 지냈다. 장모님께서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거동이 조금 가능해지자 아내는 장모님을 딸네 모시고 가서 나흘간 함께 지내다 온다. 장모님께서 증손주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딸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기에 아내가 내린 결정이다.
우리가 결혼한 지 40년이 지났으니 그 긴 기간 동안 아내의 방식으로 살아온 세월이 아내가 처갓집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길다. 그러니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태도에서 오는 불편함과 어색함도 있다. 모녀지간에 불편함이 나타날 때 나 역시 불편함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장모님께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아내가 집을 비운 어느 날 장모님께서 ‘알부민’을 하나 먹으라고 권하셨다. 싫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꾸 권하시길래 정색하며 말씀드렸다. “장모님, 한번 권해서 제가 먹지 않겠다고 하면 그 뜻을 존중해 주세요. 자꾸 강요하지 마세요. 저는 많이 불편합니다.” 장모님께서 서운하셨겠지만, 함께 지내기 위해서 죄송한 마음을 안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 말씀드린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며 후회스럽다. 그냥 주시는 대로 받고 나중에 먹겠다고 하면 되었을 텐데. 장모님께서 서운해하시고 민망해하셨을 거 같아 죄송스럽다.
아침 식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장모님, 아내, 나 세 명이 함께 먹는다. 장모님은 아침 식사 때마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잔소리하신다. 반찬이 짜다, 맵다, 달다, 쓰다, 많으니 덜어라, 참외가 먹고 싶다. 오이 없냐?, 국이 식었다. 이 야채는 좀 더 많이 주물러야 한다. 참기름 가져와라 등등. 아내는 참 착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단 한 번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장모님의 요구에 맞춰드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짜증이 난다. 장모님의 잔소리도 짜증 나고, 아무 말도 못 하는 아내의 태도에도 화가 난다. 아마 아내는 나의 눈치가 신경 쓰여 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식탁에서 장모님께 불편함을 말씀드린다면, 장모님과 아내는 모두 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식사 후 먼저 식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둘이 살다가 셋이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불편함을 안고 이해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한다. 더군다나 수술을 마친 후 회복 중인 장모님과 함께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수술 전에도 무릎 통증이 심해서 제대로 걷지 못하셨는데, 고관절 수술 후 잘 아물지 않아서 더 힘들어하신다. 그럼에도 장모님은 가능하면 빨리 당신 집으로 가서 당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일부러 몸을 많이 움직이려 애쓰고 계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아리고 불편하다. 부모 자식 간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70을 바라보는 자식의 입장에서도 장모님의 언행으로 인해 불편함이 느껴지니, 아직 철이 덜 들었나 싶기도 하다.
잘해 드리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원래 다정다감한 사람도 아니고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불편함에 대해 함구하고 모른 척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니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 장모님은 책을 많이 읽으신다. 지난 삼 개월 동안 내가 추천해 드린 책을 약 열 권 정도 읽으셨다. 할 일도 없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책을 읽으신다고 하는데 집중력이 놀랍다. 요즘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시면 무슨 책을 추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가끔 한다. 집 안에 있는 책 중 장모님께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책이 몇 권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셋이 같이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잠시 나누는 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내도 다른 술은 못 마시지만 막걸리는 두어 잔 마시고, 장모님도 한두 잔 정도는 하신다. 식탁에 세 명이 모여 앉아 막걸리 한잔 마시며 서로 얼굴을 바로 보고 웃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언젠가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장모님, 저로 인해 그리고 지금 주어진 상황으로 인해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서로 이해하고 참고 받아들이며 불편함과 즐거움을 함께 안고 지내봐요. 너무 서둘러 댁으로 가실 생각하지 마시고 천천히 회복하세요. 치매에 걸리시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비록 살갑게 대하지는 못하는 사위지만, 마음속에는 잘 모시고 싶은 마음을 늘 품고 지내고 있어요. 장모님 모습을 보며 저의 미래를 봅니다. 저희 부부가 장모님 대하는 모습을 보며 딸 부부가 우리에게 대하는 장면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딸 부부는 아내에게 무척 잘할 것이고, 저에게는 다소 퉁명하게 대할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죠. 자업자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