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따지는 어리석음

by 걷고

“분홍색 옷을 총무에게 줬다.”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엄마, 분홍색이 어디 있었어? 연 노란색이겠지.” 아내 말이다

“아냐, 분홍색 맞아.”

아내는 자신이 구입해 준 물품을 휴대전화로 찾아서 사진을 보여주며

“이것 봐, 어디 분홍색이 있어?”

아내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도 장모님은,

“아냐, 나중에 총무 만나 확인해 봐.”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한 마디 했다.

“여보, 무슨 색인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해!”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신 후 가끔 발생하는 일이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각자가 옳다고 하며 논쟁을 벌인다. 무의미한 소모전일 뿐인데 두 분 모두 자신의 의견이 옳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들이다. 맞고 틀리든 삶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도 아닌 아주 사소한 일이다. 예를 들면, “그 일을 한 연예인이 A다.”라고 하면, “아냐 B야” 하며 다툰다. 나는 듣기 싫어서 방으로 들어간다. 일상적인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이런 대화 외에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대화 주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결혼한 지 40년이 지났으니 모녀지간에 서로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잊고 예전의 모습으로 서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비단 우리 집안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나 모임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성철 스님께서는 “남의 통장을 보고 이런저런 얘기한다고 네 통장에 돈이 쌓이냐? 그럴 시간에 너의 통장을 불리도록 노력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지, 남의 공부에 시비를 걸거나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이다. 옷의 색상이 무슨 색인지, 또 그것이 맞든 틀리든 왜 그렇게 중요할까?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 해도 그것이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우리는 현실에서 주어진 상황을 파악할 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 주장을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경험에 바탕을 한 것이기에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경험을 하면서 다른 기준과 판단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 역시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내린 결정이다. 같은 경험에 각자 다른 판단을 내린다. 백인백색이고 백개의 결정과 판단이 있다.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과거가 만들어 낸 장난에 속아 미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과거의 경험이 바탕이 된 결정과 판단은 이미 그 자체에 오류가 심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판단과 결정은 이미 오염이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실상이 아닌 허상이다. 그 과거는 이전 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이전 과거는 그 이전이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옳다고 확신을 갖고 행동할 수는 있어도, 그 개인적인 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다. 자신의 판단에 따른 행동에 대해서 자신만 책임지면 되는데, 남까지 잘못 끌고 들어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언행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고 남에게 그 의견의 정당성이나 확신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런 강요는 대부분 대화 분위기를 망치거나 개인적인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시비를 떠나 이기심과 아만에서 벗어난 언행을 한다면 그나마 옳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내린 결정과 판단은 대부분 이기심과 아만을 바탕으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인간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이상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여 이타심을 키울 수 있다. 이기심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그 마음을 살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도 위한 방편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만을 잘 다스리면 자신을 존중할 수 있지만, 잘못 다스리면 자신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 아만이 올라올 때 마음을 살펴 자신과 타인 또 모든 존재를 존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마음챙김을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장모님과 아내의 사소한 언쟁이 결국 마음챙김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옳고 싶은가? 아니면 편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면 불필요한 언쟁에서 해방될 수 있다. 옳고 싶으면 끊임없이 시비를 따지고 살아가면 되고, 편안하고 싶으면 시비심을 내려놓으면 된다. 각자 선택한 것에 따른 과보를 받는 것은 삶의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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