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by 걷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부담으로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근데 이제는 가족을 떠올리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족에 대한 부담이 연민의 마음으로 변한 것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철이 드는 건지, 아니면 사람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딸과 사위, 손주 생각을 하면 괜히 울컥해진다. 그들 나름대로 재밌게 잘 살고 있음에도 그들을 통해 나의 삶을 투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살아보니,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삶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다. 그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길 기원한다.


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 지 한 달 훌쩍 넘은 것 같다. 이제는 시간 개념이 없어진 데다 날짜를 따지고 싶지도 않고, 그럴만한 이유도 없기에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장모님께서 작은 보행 보조기를 끌고 조금씩 거동을 하시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화장실도 혼자 가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조금 거동하실 수 있다는 생각과 우리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어서 혼자 움직이다 넘어지시면 큰 일이다. 그래서 아내는 이 점을 늘 상기시키며 장모님에게 잔소리를 한다. 다행스럽게도 장모님은 아내 말을 잘 들으신다.


어제는 아내가 일을 보러 나간 사이에 장모님과 둘이 식탁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 이상 장모님 말씀을 들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참 많으셨는데 그간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인이 되신 장인어른의 잘못된 판단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불만을 말씀하셨는데, 그 이면에는 그 돈으로 자식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결혼 전 썸을 타셨던 말씀과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말씀하셨다. 어느새 장모님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장모님께서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 추억을 모두 쏟아내고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금생을 마무리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장모님 말씀을 잘 들어주는 사위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싶다.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삼 일간 장모님과 아내는 딸네에서 지내신다. 증손주들과 함께 지내시는 것이 장모님의 인지와 정서 측면에서 좋을 것 같고, 손주들에게도 정서적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딸은 아내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다행스럽게 손주들은 장모님과 게임도 하고 책도 같이 읽으며 재밌게 지내고 있다. 집안 가구 배치도 바꾸었다. 이층 침대를 구입해서 손주들이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장모님을 위한 싱글 침대도 들여놓았다. 장모님의 등장으로 우리 집안 전체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주는 책임과 사랑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을 함께 축하해 주고 애도하며 한평생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다. 불편함과 편안함이 공존하고, 즐거움과 슬픔이 공존하고,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가운데에서 건강한 가족애를 느끼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손주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아내에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부모가 짐이 된다고 무조건 요양원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가? 물론 부모님의 상황과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경우에는 장모님과의 동거가 불편함보다는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는 고마움이 더 크다. 증손주들은 유치원이나 학교 가기 전에 장모님께 안기고, 장모님은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신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며 장모님 얼굴에 뽀뽀를 하고 신나게 달려간다고 한다. 장모님도, 아이들도 행복해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4대가 모여 살면서도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서로 사랑, 고마움, 불편함, 미안함을 느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장모님께서는 거실에 있는 침대 겸용 소파에서 그동안 주무셨다. 거실 공간과 화장실을 편안하게 사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동안 소파가 불편했었는데 말씀도 못하셨다고 이제야 말씀하신다. 많이 송구스러웠다. 며칠 전부터 안방 침대에서 주무시고 대신 내가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잔다.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안방까지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런 말씀 마시고 빨리 회복하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40년 이상 따로 살다가 한 공간에 같이 머무는 것이 서로에게 편안하지만은 않겠지만, 가족이기에 상황에 맞춰 불편함을 감수하며 주변 환경을 조절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가족이고, 가족애이고, 공동운명체이다. 그리고 실은 불편함보다는 고마움과 편안함이 더 많다. 게다가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모두 아내가 할 일뿐이다. 나는 그냥 아내가 시키는 일 하고, 불필요한 잔소리 하지 않고, 장모님의 말씀 잘 들어드리면 된다. 장모님께서 빨리 회복하시길, 마음이 평안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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