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상호연결성

by 걷고

16일 밤 11시 50분에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안내 산악회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이 버스는 양재, 죽전, 신갈에서 그 지역 신청자를 태운 후 걷기 들머리 지점으로 이동한다. 지난번 마친 지점인 남해군 창선파출소에서 걷기 시작하여 당항, 삼천포 창선대교를 지나 각산 둘레길을 걷고 경남 사천시 대방동 교차로에서 끝이 난다. 총 거리 30km, 소요 시간은 9시간이 걸렸다. 쉽지 않은 거리였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새벽 4시에 날머리에 도착해서 랜턴을 밝히며 어둠 속을 뚫고 걷기 시작한다. 새벽바람은 다행히 거세지 않고 부드럽고 시원하다. 정신이 바짝 드는 차가움 대신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에 다가오니 심신의 긴장도 저절로 완화된다. 길을 걸으며 심신이 이완된 상태로 걸으면 몸이 피곤한 지 모른 채 걷기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몸의 피로도는 쌓이겠지만, 대신 마음에 에너지는 충전된다. 삼삼오오 모여서 걷는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며 우리를 반긴다. 랜턴이 밝히는 길만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한발 앞으로 이동하면 랜턴은 다음 길을 밝혀준다. 밝혀준 거리만큼 걷다 보면 길이 끝난다. 언제 끝나는지, 얼마나 가야 끝나는지 알고자 불필요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랜턴이 밝혀준 길만큼만 보고 앞으로 걸으면 된다.


오르막 길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오르막길은 누구나 힘들어한다. 얼마 전 오르막길을 걷다가 발견한 중요한 사실. 오르막길을 고개 들어 쳐다보지 말고 바로 앞 한 걸음만큼만 보고 걸으면 오르막길이 오르막길로 보이지 않고 평지처럼 보인다. 전체를 보면 오르막길이지만, 한 걸음 앞만 보면 그냥 평지와 다르지 않다. 나는 오르막길 오르는 것이 내리막 길을 걷는 것보다 쉽다. 오히려 내게는 내리막 길이 어럽다.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내리막 길도 단 한 걸음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면 내리막 길도 평지가 된다. 먼 길을 내다보고 걱정하며 쓸데없이 힘들게 걸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걸어야 할 길이다. 그러니 그냥 바로 한 걸음 앞만 보고 걸으면 된다. 걱정한다고 길이 변하지도 않고, 길이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그 걸음에 마음을 모아보자. 쓸데없는 걱정, 고민, 일상사 끌어오지 말고, 그냥 지금 걷는 이 한 걸음이 인생의 마지막 걸음이라고 생각하며 온 마음을 다해 걸어보자. 발과 자연의 접촉면에서 느끼는 모든 감촉이 이 생의 마지막 촉감이라면 그 접촉이 기적처럼 다가올 것이다. 발과 땅의 접촉, 바람과 피부의 접촉, 눈앞에 펼쳐진 풍경, 함께 걷는 길벗과의 대화, 하늘에 보이는 별들이 모두 기적처럼 생생하게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 그 순간에 나와 분리된 것은 없다. 자연, 길벗, 대화, 발걸음,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그 순간을 느끼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 나서기 전에 장모님께서 “이서방, 나갈 시간 되지 않았나?”, “알부민 하나 챙겨가서 출발 전 먹어라.”, “잔기침 자주 하니 병원 가봐라.”, “옷 더 입고 가라, 춥다.” 잔소리를 하시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나를 걱정하시는 말씀이 잔소리로 들리니 언제 철이 들지 까마득하다. 어머님 말씀에 웃으며 대답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불편한 마음을 안고 걸으니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길을 걸으며 조금씩 그 불편함을 털어낸다. 굳이 불편함을 안고 작업할 필요가 없다. 걸으면 마음이 열리며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사라진다. 집에 돌아오니 장모님께서 웃으며 반겨주신다.


“이서방 올 때가 된 거 같아 미리 양치질까지 다 마쳤다. 편하게 샤워하고 식사하면 된다.”

“일부러 그러실 필요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되지요.”

“자네 와서 씻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씻는 것이 늦어지면 불편하니까.”

“앞으로 그런 걱정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저 오늘 30km 걷고 왔어요.”

“세상에나. 무릎 아껴 쓰게. 그리고 잔기침 많이 하던데 병원에 가봐, 이 돈 편히 쓰게. 병원비.”

“네. 감사합니다. 조만간에 다녀올게요.”


우리는 상호 간에 분리된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된 존재다. 같은 말도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말은 죄가 없다. 말하고 듣는 사람이 문제다. 그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분리된 것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 걷기다. 자연, 모든 존재와 자신이 분리된 것을 연결시키는 작업이 걷기다. 걸으며 우리는 몸과 마음을 연다. 그 열린 몸과 마음에 사람, 자연, 모든 존재를 담으며 상호연결성을 체득한다. 우리가 걷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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