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by 걷고


아침에 기상을 했는데, 몸이 무겁다. 어젯밤에 꿈을 여러 가지 꾸어서 그런 것 같다. 최근 며칠간 심란했는데, 그런 마음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다. 오늘은 모 단체의 직원 채용을 위한 서류 전형 심사위원으로 수원에 가는 날이다. 아침 식사 후에 내일 있을 강의안을 수정 및 보완작업을 했다. 그리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보았다. 칫솔, 치약, 책 한 권, 독서 카드, 필통, 명함지갑, 휴대전화, 선글라스, 방풍용 점퍼, 작은 수첩, 휴대전화 이어폰, 휴지. 참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


늘 그렇듯 집에서 출발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통해 송담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참선의 중요성과 화두, 스승의 필요성에 대한 법문이다. 요즘 매일 아침에 샤워를 한 후에 혈압 약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참선을 하고, 혈압을 측정한 후에 일과를 시작한다. 매일 한 시간씩 참선을 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있지만, 공부에는 진척이 없다. 화두는 금방 사라지고 잡념과 망상만 들끓고 있다. 송담 스님은 그런 과정이 공부의 과정이니 퇴굴심 내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의 스승이신 스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을 믿고 매일 좌복에 앉는다. 취침 전에 한 시간씩 더 참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한다.


수원역에 내려서 버스로 환승을 했다. 버스 안에 노인들이 소풍을 가시는지 들뜬 마음으로 즐겁게 말씀을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분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셨고 곱게 차려입은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큰 소리로 시끄럽게 말씀하셔서 조금 거슬렸다. 오후 2시부터 서류 전형을 시작하는데, 처음 가는 곳이라 12시경에 도착하여 회의실 위치까지 파악하고 느긋하게 식당으로 향했다. 주변 골목을 서성거리다 작은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운 좋게 맛 집을 찾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음식 맛이 깔끔했다. TV에서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희망퇴직 후 늘 원했던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화전민들이 기거하던 곳에서 자리를 잡으셨다. 마지못해 또는 피치 못할 상황으로 자연 속으로 도피한 분들과는 사뭇 얼굴 표정과 말투, 태도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같은 ‘자연인’이라도‘자연인’이 된 이유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르다.


점심 식사 후 주변을 산책했다. 주변에 위치한 미술관에도 들어가 보았다. 시간에 쫓기듯 사는 것보다는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이런 여유로움이 좋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일이 있으면 뭔가 쫓기는 느낌이 들고, 그 둘의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천천히 일 없이 사는 법을 배우고 있고, 뭔가를 추구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만족하며 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중년 이후의 삶은 이런 삶도 괜찮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은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는 질문이다.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참선, 걷기, 독서, 봉사. 이런 일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나의 영혼이 원하는 일이고, 나의 소명일 것이다. 참선으로 마음공부하고, 걷기로 건강을 다지고, 독서와 독후감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상담과 걷기를 통한 봉사를 하는 삶.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일 것이다.


서류 전형을 마치고 휴대전화로 이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싱가포르의 한 회사에서 인재 추천 의뢰가 들어왔다. 내가 하는 일 중 하나가 프리랜서 헤드헌터이다. 요즘 진행하고 있는 헤드헌팅 프로젝트가 없는 상황에 때맞춰 의뢰가 들어왔다. 좋은 일이다. 집중할 수 있고, 경제적 수입도 생기고, 또 하나의 고객사도 확보되고. 일을 찾으러 다니거나, 뭔가를 추구하기 위해 바쁘게 사는 것보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게 살며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을 살고 싶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선배 언니와 통화를 50분내내 하고 있었다. 그 전화 소리와 내용이 귀에 거슬렸다. 주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속은 어떤지 모르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나만 가끔 힐끗힐끗 그녀에게 눈총을 주고 있을 뿐이다. 전화 내용도 내 느낌에는 참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침대 산 얘기, 치맥이 좋을까? 피맥이 좋을까? 심심하니 계속 통화하자, 어떤 옷을 입고 있다, 친언니가 엄마와 싸워 스트레스가 심하다, 어버이 날 돈 꽂아주었다, 등등.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나만 유독 신경이 거슬릴까?


집에 돌아와서 저녁 식사 후 헤드헌팅 업무 관련하여 싱가포르에 보낼 이메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바로 옆 소파에서 휴대전화 벨 소리를 바꾸려고 여러 가지 벨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큰 벨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아내에게 잔소리와 짜증을 냈다. 전에도 가끔 느꼈지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소리에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 한번 살펴볼 일이다. 소리에 짜증내고 반응하기보다는, 짜증이 올라오는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소리는 그냥 소리에 불과한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마음의 반응이다. 소리는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 번뇌를 바탕으로 깨달음이 있듯이, 소리의 거슬림은 내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어느 하루’가 모여 나의 삶이 된다. 제임스 홀리스의 책,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에 이런 글이 나온다.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을 다 벗어던진다면,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지금까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종(種)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낳고,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시민과 납세자로 살아왔는데, 그렇다면 이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가 드라마의 주인공이지만, 그 드라마를 쓴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우리 삶의 주인공인가? 아니면 작가인가?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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