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2015, 부글북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은퇴. 은퇴를 맞이한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또 그 이후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우리는 대부분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준비 없이 은퇴를 맞이한다. 우리 위 세대에서는 은퇴 후 아무 일 없이 지내도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식들의 봉양을 당연히 받으셨고, 편안히 쉬는 삶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 은퇴 후의 삶이 사회 구조와 가정 구조의 변화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된 것도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다. 대부분 50대 중반에 은퇴를 하고, 그 이후의 삶이 최소한 30년 이상이 된다. 그 긴 기간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다시 뭔가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취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친구들을 만나 함께 지내는 것도 어느 정도이지, 그 긴 기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자식들은 모두 사회생활을 하느라 바빠서 은퇴를 한 부모와 나눌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고 심지어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 역시 사업을 정리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다행스럽게 대학원에 입학하여 상담을 전공하였고, 지금은 상담심리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남성 상담사에게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나이에 비해 상담 경력을 짧고, 대부분 상담소를 운영하는 분들은 4,50대의 여성분들로, 나이 많은 남성 상담사를 조금 꺼리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들도 나이 많은 남성 상담사를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설 상담소에서 상담사로 근무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로복지넷 EAP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고, 사회통합치유센터 마음 복지관에서 상담 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상담 공부를 하면서 나의 삶이 많이 편해졌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원만해졌고, 상황을 마주하는 마음자세도 많이 여유로워졌다. 앞으로도 상담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을 할 것이며, 상담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일이 될 것이다. 상담사로서의 꿈이라면 단 한 명의 내담자라도 나와의 상담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든지를 제임스 홀링스는 그의 저서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옛날의 자기감 (sense of self)은 흐려지고, 새 자기감은 아직 발가벗은 채로 있다. 그런 위기의 순간들은 대체로 대단히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위기는 자아에게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라고 권하는 초대장이 들어있다. 그러나 자아는 아마 이 초대에 끝까지 버틸 것이다.”
이런 힘든 상황들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죽을 때까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하게 된다. 왜 태어났는가? 나의 소명을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은퇴 후의 삶은 삶의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경제활동을 한다고 해도 몇 년 후에는 다시 은퇴자의 삶으로 돌아온다. 위와 같은 실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은퇴 이후의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 될 수 있다.
그런 질문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이 배우고 성숙하게 될 것이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자신의 틀을 깨는 고통을 통해서 타인과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요즘 연습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나의 판단 기준'을 없애는 작업이다. 그 판단 기준은 나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그간 살아오면서 나를 지켜주었던 하나의 성(城)이다. 그 성은 고마운 것이지만, 이제는 그 성을 버려야 한다. 내가 '나'라는 자신의 틀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은퇴 이후에도 그 틀을 유지하고 강화하면 할수록, 그만큼 삶의 고통이 뒤따르게 되어있다. 여유롭고 행복한 노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자신을 개방하며 다가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하고 지혜로운 노인이 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건강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바로 ‘일’과 ‘사랑’이다. 자신의 틀을 버리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올라온다. 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타인과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저절로 올라오게 되어있다. 수행자가 수행을 열심히 하면 지혜와 자비가 저절로 열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산속에서 고행을 한 후에, 세상으로 나와서 중생들을 제도하게끔 되어 있다. 어떤 수행자라도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부족한 수행자라면 그분의 수행은 올바른 수행이라 할 수 없고, 그분은 참다운 수행자가 아닐 것이다. 또한 그 사랑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사람, 동물, 자연,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이다.
왕이 한 가지 특별하고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하라고 그대를 어느 나라로 보냈다. 그래서 그대는 그 나라로 가서 다른 임무를 백 가지나 수행했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그 나라로 간 이유였던 그 임무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아무것도 수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듯 사람은 한 가지 특별한 임무를 위해 이 세상에 왔으며,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목표이다. 만약 그 사람이 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 Rumi)
16세기의 시인의 말씀이다. 그 당시의 말씀이 지금도 통용이 된다는 것은, 그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임무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 임무를 찾게 되면 할 일은 저절로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소명이며, 영혼이 목소리이며,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다. 그 일이 바로 그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아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모든 존재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 존재의 이유가 바로 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의 임무는 무엇인가?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고, 지금도 계속해서 자문하고 있다. 아직도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고 있다. 마치 깜깜한 밤을 지나 어슴푸레한 밝음이 서서히 나타나는 느낌이다. 명상, 걷기, 상담을 활용하여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힘든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임무이고 나이다. 또한 글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삶이 나의 임무이고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