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콤플렉스는 무의식에 있는 에너지의 덩어리이고, 역사적 사건들로 가득하고, 반복을 통해 강화되고, 우리의 인격의 한 부분을 보여주었으며, 프로그램처럼 입력된 반응과 기대를 맹목적으로 일으킨다,’라고 했다. 제임스 홀딩스라는 임상심리학자는 ‘콤플렉스는 무의식이 자극을 받을 때 일어난다. 콤플렉스에 휘둘리는 그 순간에는 우리는 그 ‘홀림’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한다. 패턴들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우리를 넓은 미래가 아닌 편협한 과거에 얽매이도록 만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무의식에 갇혀있는 콤플렉스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콤플렉스의 영향으로 삶 속에서 어떤 자극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가 인식을 하기도 전에 자동적으로 반응을 하고, 그런 반응들 이 강화를 하여 점점 더 강력한 씨앗으로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더 큰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물들이 우리에게 인식되고 또한 우리 의식이 내 눈 앞의 현상, 즉 대상을 의식하는 구조를 밝히는 학문을 현상학이라고 한다. 인간 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개개인의 현상학적 관점에 대해 이렇게 표현을 하였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내가 현재 지각하고 경험하는 대로의 세계이다. 당신이 알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당신이 현재 지각하고 경험하는 대로의 세계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 하나는 그렇게 지각된 현실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 같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얘기다. 같은 경험을 해도 그 경험에 대한 느낌과 감정과 생각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연 실상(reality)은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지고, 냄새 맡고 있는 모든 것이 과연 실재(實在)하고 있을까? 만약 실재한다면, 같은 물건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점이 모두 같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실상은 칼 로저스가 얘기했듯이 사람마다 다르다. 동일한 세상에 대해 각자 다른 세상을 보고 서로 얘기를 하니 참다운 소통이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또한 동일한 사람과 상황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고 배워나간다. 하지만, 그 경험의 과정에서 겪은 여러 상황들이 우리를 통제하고 있다. 제임스 홀딩스가 한 말 중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이 말이 무섭게 다가온다. 우리 속에 들어있는 무의식, 콤플렉스, 아니면 뭐라 칭하던, 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주인인데,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놈들이 우리를 통제하고 지시하고 있다.
불교에 유식학(唯識學)이라는 학문이 있다. 정승석은 그의 저서 ‘유식에서 상식으로’에서 ‘유식론은 단순히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 과정을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그 진상을 밝히는 존재론이다. 유식학은 기억이 잠복했다가 표출하기를 반복하는 두 가지 기능을 면밀히 고찰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밝혀나간다.’라고 기술했다. 즉 유식학은 불교의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의 원리와 만법의 실상을 밝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무의식 내에 잠재해 있는 콤플렉스를 의식화하여 외부 세상을 왜곡되지 않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심리치료기법이다. 현상학은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세상이 주관적인 것이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식학은 모든 존재는 개념과 표상으로 이루어진 허상이므로, 허상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는 바른 견해 (正見), 즉 바른 시각을 갖고 세상을 보라고 가르친다. 무의식이나, 현상학적 세계, 그리고 유식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존재의 실상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과거 경험과 사고로 만들어진 개념화된 세상, 즉 허상(虛像)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존재는 하되, 각자 다른 존재로 판단하고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실재는 없고, 우리가 실재라고 인식한 세상만 있는 것이다. 이것은 허상이다. 하지만 각자에게는 실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무의식 속 콤플렉스나 스스로 개념화한 관점이 만들어 낸 왜곡된 시각, 즉 바르지 못한 시각으로 세상과 사람들과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왜곡된 시각을 정견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의 고통을 평온함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되면 고통이 우리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 허상을 붙잡고 일희일비 (一喜一悲) 하는 모습의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그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명상은 감각 입력 데이터 하나하나를 모아 ‘의미 있는 자기’라는 거대 구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내려놓고 마음이 쉴 수 있도록 피난처를 제공한다. 제대로 된 알아차림의 수행 안에서 우리는 의식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강력하게 알아차리지만, 그 즉시 그것들을 놓아 버리고 다음 순간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그 어떤 것도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통과해 간다. ……. 순간순간 우리 내면에 심리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 현상에 대한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의 고리를 끊을 수도 있고, 나아가 깊이 뿌리내린 믿음을 바꾸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 우리의 모든 경험을 망치는 보편적인 불만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액설 호퍼 외 지음,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2018)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편들이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깨닫고 모든 세상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는 방편으로 다양한 명상 수행법을 전수해왔다. 각자 자신에 맞는 방법들을 찾아 노력을 하여 겉으로 드러난 허상에 속지 말고, 바른 시각으로 같은 세상을 지금과는 다르게 바라보며 삶 속에서 행복과 평온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제가 불교에서는 하안거 결재일이다. 앞으로 3개월간 수행자들은 두문불출하고 각자의 화두와 씨름을 할 것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이 수행자의 삶이다. 부디 깨달음을 얻으시고 중생들을 교화해 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