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트롯'과 '나'

by 걷고


모 유통업체의 문화센터에서 ‘명상’ 강의를 진행하는 날이다. 처음 가는 곳이고,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둘러 출발했다. 전철역에 내려서 버스로 환승을 해야 하는데, 정류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지도를 보며 약 20분 정도 걸려서 버스 정류장을 겨우 찾았다. 버스로 환승을 한 후에도 40분 이상 이동, 집에서 출발하여 센터까지 도착하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아침이지만 날씨는 무척 더웠고,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해서 그런지 센터에 도착하니 조금 지친 느낌이 들었다.


지하 커피숍에서 차 한잔 마시며 강의 자료를 다시 한번 검토하며 휴식을 취했다. 센터 사무실로 가는 길에 다른 센터의 담당자가 문자로 참석자 수가 적어서 두 개의 강의를 취소를 할 수밖에 없어 죄송하다는 연락을 하였다. 맥이 풀리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담당자에게 마음 쓰지 말라고 정중하게 문자를 보냈다.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 센터 사무실에 방문하여 인사를 드린 후에 강의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강의실 내부를 걸으며 강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이 유통센터에서 실시하는 첫 강의였지만 참석자들 모두 집중도 잘해 주시고 진지하게 동참해 주셔서 별일 없이 잘 마쳤다.


센터 사무실 입구 벽면에는 TV에서 보았던 유명 강사의 포스터와 강의 내용이 걸려있었다. 그 외에 몇몇 유명 강사들의 사진과 강의 내용도 걸려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진행하는 강의 안내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작은 게시판에서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안내 책자에도 유명 강사들의 강의 프로그램은 한 페이지씩 실려있었고, 나의 강의에 관한 안내는 단 세 줄에 불과했다.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이제 막 강의를 시작한 내가 확실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강의를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무명 강사가 그분들과 입장을 같이 견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 허전함과 씁쓸함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시간 강의를 위해 왕복 이동시간 포함하여 총 5시간이 소요되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별로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강의를 하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꼭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나? 지금까지는 강의를 하며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성실하게 준비해서 기쁜 마음으로 강의를 했다. 강의하는 것을 좋아하고, 강의를 하면서 지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력을 느낀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내가 몰랐던 나의 재능 중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좀 더 성실하게 강의 준비도 하고, 강의 콘텐츠도 개발하고, 강의할만한 곳을 찾아 연락을 취하며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많은 생각이 떠오르며, 최근에 TV에서 방영된 트롯 경연대회인 ‘미스 트롯’의 참가자들과 ‘나’ 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신문과 TV에서‘김양’과 ‘숙행’, 두 가수의 얘기를 시청하고 읽었다. 김양은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방 행사 위주로 다니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밤 11시에 숙소에 도착해서 컵라면으로 그날 첫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 친구인 가수 ‘장윤정’과 만나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도 많이 올라왔다. ‘숙행’도 지방 공연을 많이 다니고, 심지어는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을 하기도 하였고, 교통비와 식대를 제외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을 정도의 수입으로 버티며 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두 분 외에도 우승자를 포함하여 다른 참가자들 모두 무명으로 10년 이상 힘든 시간과 갖은 수모를 당해가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참가자들 중에 가수를 꿈꾸고 있는 분들도 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가수들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가정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임에도 그런 역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 경연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이유는 아마 나와 그 참가자들이 같은 처지라는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참가자들의 노래보다는 그들의 살아온 삶을 보고 들으며 나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어 그렇게 열심히 시청을 한 것 같다


인생이모작 준비를 하면서 남을 돕고, 경제적 수입도 올리고, 보람을 느끼며 평생 할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 길이 바로 상담심리사였다. 어렵게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지만, 나이는 많고 상대적으로 상담 경력이 짧은 남성 상담심리사에게 상담사로 근무할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들어왔고 성실하게 준비하여 즐겁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강의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 나의 삶이 만족한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나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만약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면, 그 이후에 무엇을 하고 싶을까?


언제부터인가 강의 참석자들에게 나 자신을 ‘심신 힐링 컨설턴트’라고 소개를 한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 명칭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일이 바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다. 상담, 명상, 걷기를 통해 심신이 지친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관련 분야에 관한 강의도 하며 ‘심신 힐링 컨설턴트’로 살고 싶다. 참선 수행을 꾸준히 하며 마음 근육을 키우고, 걷기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다지고, 성찰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여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고 싶다. 살면서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삶을 살고 싶다. 뭔가를 이루려는 삶이 아닌, 이미 갖고 있는 모든 재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삶을 살고 싶다.


‘미스 트롯’ 참가자들이 어느 무대든 불러주면 달려가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꿈을 향해 가듯이, 나 역시 찾아주는 곳이 있다면 ‘심신 힐링 컨설턴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조건 달려갈 거야’라는 트롯 가사처럼 무조건 웃으며 달려갈 것이다. 비록 ‘쨍하고 해 뜰 날’이 오지 않더라도, 비, 바람, 눈, 구름 등 다양한 날씨의 변화를 한껏 온몸으로 맞이하며, 생동감과 활력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과정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일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 것이다. ‘미스 트롯’의 모든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힘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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