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전에 꿈을 자주 많이 꾸어서 주변에 얘기를 했더니, 꿈 일기를 기록하고 꿈 분석 작업을 해 보라는 동료 상담사들의 조언을 여러 번 들었다. 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꿈 일기도 몇 번 기록을 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고, 그 이후로 꿈도 그다지 자주 꾸지 않게 되자 바로 시들해졌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하루에 대여섯 가지의 꿈을 꾼다. 그렇게 꿈을 꾸고 나면 하루 종일 몸이 피곤한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그 이후로 다시 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내 무의식의 방’ (김서영 저)이라는 책을 읽으며 꿈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꿈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마음이 많이 공감이 되었다. 특히나 외국에서 힘들게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 후 자리잡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어낸 과정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작가는 그런 어려운 상황을 꿈 작업을 통해 극복해 나가고 있었고, 노출하기 어려운 자신의 내밀한 꿈 분석 내용을 책에 공개하여 꿈이 알려주는 방향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꿈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아직도 상담사로 자리잡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상황이 떠올라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을 꿈 분석을 위한 책으로 읽었다기보다는 작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위주로 읽었다. 그러면서 꿈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칼 융은 ‘자아’가 ‘자기’를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내가 이해하는 ‘자아 (ego)’는 의식의 세계이며 이기적인 자신이고, 자기(Self)’는 무의식의 세계이며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하나로 연결된 인간 본성이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가아(假我)와 ‘진아(眞我), ‘상(相)’과 ‘불성’과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 모든 존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자신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먼저 올라오게 되어있다. 그래서‘자아’가 먼저 형성이 되고, 그 ‘자아’가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삶은 ‘자아’가‘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능적인 인간’이라는 표현이 있다. 기능 위주의 삶, Doing Mode의 삶, 뭔가를 이루어내는 목표지향적인 삶,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직 역할에만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자기의 삶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다. 이런 삶은 ‘자기’를잃어버린 채 ‘자아’에 의해 끌려 다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종노릇을 하는 삶이다.
나는 전형적인 ‘기능적인 인간’의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 주변에 의지할 곳 없고, 역할 모델로 따를만한 멘토도 없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잠 나’를 위한 삶인지 살펴보지도 않았고, 주어진 역할을 하기 위해 늘 동분서주했다. 가장, 남편, 사회인, 사업을 운영하는 사장, 친구나 선후배, 아빠, 아들과 사위 역할 등, 그 어느 곳에서도 나 자신의 ‘자기’ 없었고, 오직 역할을 수행하는 ‘자아’만 있었다. 아마 그래서 늘 불안하고 뭔가 허전한 느낌을 많이 받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방황하기도 했고, 술에 많이 의지하기도 했으며 일종의 도피처로 이 사찰, 저사찰 기웃거리며 잠깐이나마 심신의 평온을 구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불교 공부를 하고, 상담 공부를 하며 내면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그간의 이유 모를 방황과 고통에 대한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모를 내면의 저항과 세상에 대한 반항의 이유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고, 그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도 하였다. 어릴 적 가정환경과 그로 인한 열등감이 주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런 불안과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과 좌절을 겪었던 그 과정이 ‘자아’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겨우 머리로 이해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가슴과 온몸이 그런 삶을 살 준비는 덜 되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 방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알고 있지만 삶의 방식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그런 삶에 저항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삶의 방식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다. 그래서 요즘 꿈을 더 많이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혼란의 시기이다. 그 혼란은 삶의 태도를 바꾸는 전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혼란이다. Doing Mode의 삶에서 BeingMode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게는 삶의 마지막 도전이자 과제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이론적으로 또 머리로만 이해했지만, 이제는 마음으로 또 온몸으로 이해를 하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그 방법이 과연 ‘자기’가 원하는 길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꿈 분석 작업과 참선 수행을 통해서 그 방법을 찾아가려고 한다. 두 가지 모두 ‘자기’를 찾고,‘자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자아’가 ‘자기’가 되는 과정은 불안을 견디는 과정이고, 불확실한 세상에 자신을 던지는 작업이다. 꿈 분석을 통해 ‘자기’가 보내온 메시지를 듣고, 참선수행을 통해 ‘자기’의 주인을 찾아야 한다. 두 방편은 서로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60대 초반이 되어 ‘자기’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Doing Mode의 삶에서 Being Mode의 삶으로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