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나 (작가 김훈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 김훈의 소설을 읽으며

by 걷고



준비한 일에 대한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을 차분히 먹고 진득하니 기다리며 하루하루 일에 충실하면 되는데, 합격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 평상심을 방해한다. 그런 마음이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사무실에 나와서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책상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흔들려 집중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그나마 결과에 마음이 쓰이면서도 책상에 앉아서 할 일을 차분히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소설을 읽는 것이다. 최근에는 김훈씨의 소설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오래 전에 김훈씨의 소설을 읽고 놀란 적이 있었다. 글에 한이 서린 느낌과 강한 글의 힘이 느껴져서 놀랐다. 글에 힘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경험한 것 같다. 같은 내용인데도 그 분의 글은 강한 절제와 강한 힘이 느껴지고 설움과 한을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 ‘강산무진’, ‘흑산’, ‘공터에서’ 모두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 조사와 노력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분의 경험도 바탕이 되었을 것이고, 책 한권 쓰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있어서 그런 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는 음악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곡가는 없는 음을 만들어 오선지에 옮기고, 소설가는 없는 얘기를 만들어 활자화 한다. 물론 작곡가나 소설가나 그 분들의 작품 속에는 자신들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을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경험이 바탕이 되고, 주제를 선택한 후에, 그에 맞는 자료와 현장답사를 바탕으로 글이 쓰여 지고 음악이 만들어 질 것이다. 결국 글이나 음악은 그 사람 자체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거짓일 것이다.


유배지에서 지내는 한 유학자의 삶, 천주교도로서 박해를 받는 삶,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고발하는 삶,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삶, 서민들의 고통과 설움, 권력과 금력을 지닌 자들의 횡포와 더 누리고자 하는 욕심, 아내의 죽어가는 몸을 보고 다른 여인을 생각하는 본능의 무서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의 실상 등. 김훈의 소설은 진짜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서민의 삶을 그려내는 것을 보며 그 분의 삶을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래서 글 속에 설움과 한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본능을 벗어나지 못하고 갈등하는 우리의 포장된 가면을 적나라하게 벗겨내고 있다.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숨을 곳이 없다. 동나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주기에 거북스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얘기해 주기에 통쾌하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 가면이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참 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칼로저스는 인간중심상담 이론에서 ‘정신적인 고통의 시작은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적인 자아의 괴리감에서 온다’ 고 했다.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적응하기 위해 가면을 쓸 필요도 있지만, 그 가면을 벗을 수 있을 때는 벗어서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가면이 실제가 되어버리고, 자신의 참 모습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잊혀진 상태로 살기도 한다. 가면을 참 자기로 아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 중에는 권력욕, 명예욕, 금력, 체면욕 등이 있다. 어쩌면 이를 못 가진 자신이 내뱉는 넋두리 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의 참 모습을 잊고 권력, 명예, 돈, 체면의 노예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김훈은 어쩌면 우리들에게 그 가면을 벗어던지라고 강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직접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그 분 마음속에도 어떤 큰 돌덩어리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 돌덩어리가 지금은 글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글을 쓰면서 동시에 돌덩어리를 잘게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쯤 잘게 부순 가루들이 체화되어 더 이상 이질적인 돌덩어리가 아닌 자신의 일부로서 삶 속에 녹아있을 수도 있다.


콩나물 버스를 타거나 지옥철을 타고 매일 출근 전쟁을 치러 본 사람들만이 그 고통을 알 수가 있다. 직장에서 상사들의 압박과 거래처의 갑질을 겪어 본 사람들만이 그들의 고통을 공유할 수 있다. 사업으로 인해 바닥을 쳐본 사람들만이 그 고통을 실감할 수 있고, 학비를 벌기 위해 수많은 알바를 해 본 사람들만이 그 힘듦을 알 수가 있다. 결국 김훈의 소설은 자신의 고통의 산물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분의 글을 읽으며 소설 쓰기를 포기할 수 있도록 미리 내 한계를 알게 해 줘서 고맙다. 또한 글 하나 쓴다는 것이 얼마나 책임감이 막중한 가를 알게 해 주어서 앞으로 글을 쓰는데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고맙다. 어느 작가는 매일 A4 한 장 정도의 글을 쓰셨다고 한다. 작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 작가처럼 매일 글을 조금씩 쓰고 공유하며 살고 싶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 좋다.


지금도 기다림을 기다리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쓰며 굳이 너무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기다림을 통해서 내 마음 속에 돌덩어리 하나가 생겼으니, 내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기다림. 결코 나쁘고 부담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기다림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삶의 자양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합격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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