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사람, 삶 (해파랑길 3회 차)

양남에서 감포항 (20180202 - 20180204)

by 걷고

길동무들보다 하루 일찍 출발한 나들이님과 저는 경주 송화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누구나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의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봅니다. 금장대는 임진왜란 때 경주읍성을 탈환하기 위한 서천 전투의 지휘 본부가 있었고 시인 묵객들이 찾아 시를 읊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 아래에는 애기청소라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에 현대판 유배지를 같은 느낌이 드는 이상한 집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변에는 싸리나무로 담장을 낮게 만들어 놓았고, 팔각형의 이상한 집 모양의 숙소가 있고, 앞에는 신발 한 켤레가 놓여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출가와 가출의 차이점을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출가는 집을 떠나 세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구도를 위한 행위이고, 가출은 현실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도피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집을 떠난다는 사실은 맞는데, 그 의도는 사뭇 다릅니다. 또한 가출은 가출 한 곳에서도 또 다른 곳으로 가출을 일삼기도 하지만, 출가는 어디에 있든 늘 출가자의 마음으로 살기에 굳이 출가를 위해 장소를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산길을 오르다 큰 묘소와 그 옆에 소박하게 안치된 수목장을 보았습니다. 과연 사람이 죽은 후에 필요한 땅의 크기는 얼마일까요? 출가자와 가출자 모두 언젠가는 어딘가에 묻힐 것입니다.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묻히는 것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망자는 자신의 무덤이 어떤 모습이든 전혀 관심이 없을 겁니다.

경주는 밤에 다시 태어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돌아볼 수 있고, 지금의 흔적 위에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 분황사의 본당에 모셔진 전각의 크기에 비해 무척이나 큰 약사보살은 아마도 모든 중생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큰마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석탑의 갈라진 틈과 풍상에 허물어진 모습은 세월 속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석탑을 지키는 신장과 사자상 역시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황룡사지의 허허로움은 무상의 진리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세월로 인해 잔뼈가 굵은 나무들의 군락지인 계림의 나무들은 사계의 흐름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조명을 만나 나무들은 다시금 생명을 받고 태어납니다. 붉은 조명을 받은 첨성대는 마치 한지로 만들어진 느낌이 들 정도로 부드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원효대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 들어갔다’고 전하는 경주의 월정교는 지금 마무리 공사로 한창이었지만, 조명을 받으며 드러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야경이 설총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선조들에 대한 무례함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경주 야경의 가장 아름다운 곳은 ‘동궁과 월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동궁의 동쪽에 있는 호수 월지(안압지)는 별궁인 동궁에 붙어있는 일종의 유원지로 거대한 인공 연못에 조경을 해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합니다. 그 아름다움 때문인지 추운 밤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경주버스터미널에서 합류한 세 분의 회원들을 만나 양남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약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버스로 이동하여, 지난 번 걷기를 마쳤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길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와 해파랑길을 어느 한 곳 빠뜨리지 않고 온전히 발로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출발부터 거센 바람이 우리를 밀어냈지만, 우리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걷는 사람만이 겨울바람, 파도소리, 겨울 바다를 느끼고, 듣고 볼 수 있습니다. ‘동백의 아름다움은 겨울을 이겨내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겨울 바닷길 걷기의 아름다움은 거센 바다와 추위를 온 몸으로 견뎌내기 때문’에 더욱 그 가치와 묘미가 클 것입니다.

문무대왕의 수중릉을 본 후에 이견대에 올랐습니다.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수중릉을 만들라고 하셨고, 이견대에서 그 후대 왕과 신하들이 그 수중릉을 바라보며 호국충정의 마음을 다졌을 것입니다. 이견대에서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마지막 길은 감옥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한 나라의 국부가 굳이 사리사욕을 채울 필요가 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감은사지에서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본존불이 모셔졌던 금당터를 보며 사라져버린 예전의 전각의 규모만 짐작할 수 있었고, 그 터를 지키고 있는 동탑과 서탑이 허허롭게 햇빛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중릉과 이견대, 대통령들의 감옥, 터전만 남은 감은사지가 함께 뒤섞여 무상함을 일깨워주고 있었습니다.

바닷길을 강한 바람을 맞으며 계속 걸었습니다. 서너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도 조금씩 지쳐 가는지 얘기는 없이 앞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날씨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감포항 바로 못 미쳐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낮은 산 하나를 넘으면 감포항, 이미 해는 져서 바닷길로 들어설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해안경비를 맡고 있는 군인들이 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안가 대신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길을 찾다가 자물쇠로 굳게 잠긴 철조망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옆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진 높은 벽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외부에 있는지, 아니면 갇혀 있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철조망 안쪽에서 사람들이 보여 큰소리로 불러 보았습니다. 경비대 군인들이 우리를 보더니 길이 없다고 하며 되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철조망은 군부대 막사를 보호하기 위한 담이었고, 우리는 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를 하는 침입자가 될 뼌 하였습니다. 되돌아 나오며, 앞에서는 나들이님이 랜턴을 비추고, 맨 뒤에서는 제가 랜턴을 비추며 깜깜한 산길을 안전하게 되돌아 내려왔습니다.

인적이 드문 마을, 택시를 불러도 대답도 없고, 버스 노선도 알 길이 없고, 식당과 주유소에 물어도 우리는 그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미인계를 이용한 히치하이킹을 시도 하였습니다. 깜깜한 밤에 큰 칼 옆에 차듯 스틱을 들고, 위협적으로 서있는 다섯 명의 무리들에게 차를 세워준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에 히치하이킹은 애초에 무리한 시도였는지 모릅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지나치듯 가던 SUV 승용차가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미인 분들이 달려들어 애걸을 하였고, 결국 그분의 차를 이용하여 감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해주었더니, 짐 보따리 찾아내라’는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차 안에서 그 고맙고 친절한 아저씨에게 싸고 맛있는 식당을 알려 달라, 싸고 깨끗한 숙소는 아느냐, 우리를 데려다 줄 수는 있느냐 등 끝없는 질문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그 분은 너무나 친절하게 우리를 횟집 앞에 내려다 주시며, 주인에게 대접 잘 하라는 부탁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은 참 살만한 곳입니다.

삼일 째 아침, 어제보다 더욱 강한 바람이 우리를 거부하듯 반겨주었습니다. 배부르고, 편안한 휴식과 충분한 잠을 잤기에 바람, 추위, 파도소리는 우리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반가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포항에 진입을 한 후에 버스를 타고 경주로 걸었던 길을 되돌아왔습니다. 우리도 다시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갑니다. 가출, 아니면 출가를 한 후에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갑니다. 심우도(尋牛圖) 라는 불화(彿畵)가 있습니다. 열 장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합니다. 그 마지막 그림이 입전수수(入廛垂手)입니다. 그 그림의 내용은 중생제도를 위해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것을 상징화한 그림입니다. 우리가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입전수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삶 속의 나 (작가 김훈의 소설을 읽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