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스포일러 포함)

by 걷고



심우도 (尋牛圖)



심우도 (尋牛圖)라는 그림이 있다. 어린 동자가 잃어버린 소를 찾는 과정을 열 단계의 그림으로 표현하여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자신의 본성을 찾는 불교 수행의 과정을 표현한 그림이다. ‘소’는 자신의 본성, 불성, 참 자기 등이라 할 수 있고, ‘동자’는 우리가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몸과 생각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관람 후 심우도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심우도의 첫 번째 단계인 심우(尋牛)의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경지를 획득하는 과정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심우는 상구보리(上求菩提)로 깨달음을 구한다는 의미이고, 입전수수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단계로 깨달음을 얻은 후 저잣거리로 돌아와 중생을 교화하는 단계이다.


영화 초반 부에 주인공 파텔은 집 주변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닌다. 파텔에게는 집 주변이 세상의 전부이다. 그런 파텔이 학교에 입학 후 다른 나라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파텔은 학교에서 새롭게 알게 된 세계에 대한 동경과 갈증이 생기며,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외부 세계를 모르고 자신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의미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거나 거부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표현의 방식, 옷 입는 방식, 먹고 살아가는 방식 등 사소한 일에도 자신의 틀을 강요하기도 한다.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갇혀 살면서 점점 더 그 감옥의 벽을 높고 두껍게 만들어 가며 살아간다. 소통을 한다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점점 더 가족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과 단절의 골은 깊어만 간다.

학교는 우리에게 더 넓은 세상과 다양한 사고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곳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그 중요성을 알려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표현하는 법을 훈련시켜주기도 한다. 자신과 가족과 친척들이 온 세상 인구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선생님과 친구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의 존재도 가르쳐준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며, 약속을 중시하고, 자신의 언행에 대한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운다.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과 지식의 습득은 성장과 성숙에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해 준다. 학교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내면의 꿈틀거림이 시작된다. 이런 꿈틀거림은 변화를 요구하며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학교라는 정규 과정만이 유일한 학교는 아니다. 학교를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인생학교도 있다. 그 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장소가 아니다.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온갖 역경과 쾌락을 경험하기도 하고, 좌절과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점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학교가 아마추어의 세계라며, 사회는 프로의 세계이다. 아마추어 세계는 함께 성장하고 공평한 기회와 평등이 보장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혹한 적자생존의 원칙이 존재하고, 불평등과 불합리가 존재하며, 승리자 독식의 원리가 지배하기도 한다. 물론 그 속에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아름다운 사람과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존재한다. 인생학교에는 아름다움과 추함, 적과 동지, 자비와 무자비, 승리와 패배,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한다.


학교와 인생학교를 경험하게 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소명이 무엇인지, 왜 태어났는지 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오며 방황을 하게 된다. 이런 위기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고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귀한 선물이다. 여행은 이런 시기에 지혜로운 답변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방편이다. 자신과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곳을 방문하고, 처음 접하는 다양한 문화와 관습을 체험하고, 자신과 참다운 만남을 하기도 한다. 또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도 키우게 되고, 자기 삶의 모든 선택권과 결정권을 지닌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기존의 편협하고 규격화된 사고의 틀이 점점 허물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세상과 모든 존재를 진심으로 수용하고 참다운 소통을 하게 된다. 삶 속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성장과 성숙을 하게 된다. 남의 즐거움과 고통이 나의 것임을 알게 되고,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며, ‘이것과 저것’의 벽이 허물어지며, ‘좋고 나쁨’의 분별이 사라지게 된다.


준비된 일정과 예정된 곳을 방문하는 것이 여행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을 수용하고 적응하며 지내는 일상의 삶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지는 국내외 어느 곳이든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과의 교류, 취미생활, 심지어는 일터가 될 수도 있다. 여행에서 할 일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그 역할을 충실하게 완수하는 것이다. 과거에 매여 힘들게 사는 것도 아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는 것도 아니며, 지금-여기의 삶을 즐기는 것이다. 결과를 기대하거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여행이 아니고, 과정을 살아가는 것이 여행이다. 그 과정의 부산물이 결과이지,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여정’ 이라고 한다. 여행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Only the brave can deserve the fair.’ 라는 격언이 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미인은 사랑을 뜻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뜻하기도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감옥 속에서 장님처럼 살아왔던 파텔이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다. 심우의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입전수수의 단계인 교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눈 밝은 안과 의사가 된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파텔이 어린 학생 세 명에게 자신의 여행담을 얘기해주며 “감옥에서 4년을 보낼래, 아니면 매일 학교에 나올래?”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당연히 학교를 선택한다. 감옥은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세상이다. 학교는 ‘자신도 모른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곳이다. 여행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과정이고, 그 이후 중생제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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