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인생의 마술)

by 걷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정적으로도 불안정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는 인물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이 수중발레를 연습하며 자신들의 속내를 얘기하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고, 나중에는 서로 위로를 해주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성취감을 느껴 본 적이 별로 없는 이들이 연습을 통해 조금씩 자신들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런 성취감이 삶에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가족들의 지지나 사회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지만, 서로의 비슷한 처지에 대한 공감을 통해 자신만이 힘든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질감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삶은 과거에 체험했던 경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현재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과거 경험의 최종 결과물이 지금의 삶이고, 그런 삶은 다시 지금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다시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을 보면 예전의 그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변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과거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과연 과거로부터 벗어나 지금-여기에 충실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가? 우리의 삶은 변화가 불가능하고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며 살 수밖에 없는가?


정신분석적 입장에서 본다면, 과거 경험이 무의식에 갇혀 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자극을 받게 되면 튀어나온다고 한다. 심리학자인 제임스 홀딩스는 “콤플렉스는 무의식이 자극을 받을 때 일어난다. 콤플렉스에 휘둘리는 그 순간에는 우리는 그 ‘홀림’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한다. 패턴들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우리를 넓은 미래가 아닌 편협한 과거에 얽매이도록 만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한다.”라고 했다. 이 글 중에 가장 섬뜩하게 다가오는 말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주인임에도 다른 놈이 주인 역할을 하며 우리를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는 무의식의 종노릇을 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분석적 입장에서의 문제 해결 방법을 Freud는‘이드(id)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게 하라’고 하며 ‘무의식의 의식화’를 제시했다. 미숙한 이드 및 초자아 패턴들이 있는 곳에 성숙한 자아가 머물게 하여 억압되고 무시해 온 본능적 욕구와 감정 등을 현실적이고 성숙한 방법을 통해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담자가 꿈 분석, 자유 연상, 전이 등의 해석을 통해 내담자에게 전달하고 내담자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던 언행과 사고, 감정 등의 패턴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되고, 이런 통찰을 훈습하여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중심상담적 입장에서 본다면,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자기들의 가치 평가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그 기준에 따르기를 강요할 때 자기 개념과 경험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그 괴리감으로 인해 심리적인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실제의 경험과 관념을 혼동하여 왜곡된 현상적 장(場)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라도 인식하는 느낌, 경험, 사고, 기억 등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며 고정관념을 갖게 되고, 반복적인 패턴을 보이게 된다. 이론 인해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실현 경향성’이 방해를 받아 자신과 사회의 발전과 성장에 방해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인간중심상담적 입장에서의 해결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경험과 불일치를 초래하는 자기 개념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고, 다른 것은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실현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론으로 인간중심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상담자의 진실성, 내담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수용, 그리고 내담자의 대체 자아(alter ego)가 되는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이런 관계를 통해 지금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기 개념의 변화가 생기게 되고, 이런 변화는 내재되어 있는 실현경향성을 발현하게 만들어 준다.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존재의 실상(實相)에 대한 무지인 무명(無明)으로 인해 고통이 시작된다고 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세계는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라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좋은 것은 취하려는 탐착과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려는 혐오로 인해 고통이 생긴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자신을 포함하여 세계라는 현실은 모두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낸 구성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즉 일체 유심조 (一切唯心造)이다. 인연법에 의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재(實在) 한다고 믿고, 잡거 싶어 하거나 밀어내고 싶어 한다. 그런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고통이 시작된다고 본다.


불교적 입장에서의 해결방법은 여실지견(如實知見)을 갖출 수 있도록 수행을 하는 것이다. 즉 존재의 실상인 무상과 무아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갖추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다양한 수행법이 있다. 참선, 묵조선, 염불선, 위빠사나, 호흡명상, 절 수행, 자애 명상 등. 이런 수행을 통해서 ‘자기’라는 존재의 무상함을 보게 되고, 보게 되면 탐착과 혐오에서 자유롭게 되어 더 이상 심리적인 고통으로 괴로워할 일이 없게 된다. 또한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모든 존재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저절로 올라오게 되어 자비행을 실천하게 된다.


정신분석적 입장, 인간중심상담적 입장, 불교적 입장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변화가 가능한 존재이고 각자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담, 수행 또는 다른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변할 수 있고, 과거가 매어놓은 사슬에서 자유롭게 되며, 지금-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변화는 많은 시련을 요구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반복으로 인한 습관의 힘은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좌절을 딛고 반복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선택권과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지금 현재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만들었다는 절망감을 느낄 수 있고, 또한 동시에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감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다. 주인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과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습관의 종으로 살아갈지는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들은 세계 남성 수중발레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내려 일출을 보며 서로를 껴안고 축하를 한다. 각자 자신의 현실로 돌아온 이들은 모여서 신문과 SNS를 통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기사를 찾지만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일상으로 돌아와 가정에서 또 직장에서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주변 상황은 변한 것이 전혀 없는데, 그들은 변했고, 그들이 바라본 현실은 이미 다른 세계가 되어 있었다. 인생의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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