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집'
역할이 바뀌었어요
부모가 아이들처럼 살고 있고, 아이들이 부모처럼 살아가고 있다. 부모들은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내팽겨쳐 놓고 생계를 위해 또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다. 반면 아이들은 부모가 되어 집과 가정을 지키고 가정의 불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동심을 접어두고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다 큰 어른이 살고 있고, 부모들의 마음 속에는 어릴 적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랑과 배려를 받고자 하는 상처받은 유아들이 살고 있다. 뒤바뀐 역할로 인해 가정은 깨지고, 식구들은 법적으로 가족이라는 거 외에 가정 내에서 가족으로 인정하거나 인정 받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으로도 가족의 관계를 정리하며,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남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12살의 주인공 ‘하나’ (김나연 분)는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홀로 애태우며 집안의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영화가 내내 마음 속에 불편함을 준 이유이다. 따뜻한 가족 영화라 보기에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평범한 가정의 일상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사실적인 표현이 부모들이 감추고자 했던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어서 불편함과 수치스러움이 많이 올라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는 또한 근처에 살고 있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어린 자매들의 엄마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하나’는 과연 초등학교 5학년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50세 중년 부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 어떤 삶을 살아갈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에릭슨 (E. Erikson) 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나이는 ‘근면 대 열등감’ 단계로 또래와의 놀이, 가정과 주변 환경을 통해서 다양한 유형의 학습 기회가 제공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보내면 근면감의 획득, 즉 자신의 유능감을 발달시켜 자신감 있는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면 이런 환경이 제공되지 않으면 열등감이 발생하며 사회 적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굳이 이런 이론을 따질 필요도 없이, 초등학생은 부모와 가족의 사랑, 선생님의 애정과 교육, 친구들과의 우정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고, 그런 사랑과 우정을 바탕으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가 있다. 또한 성장한 후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대물림을 해주고, 이러한 대물림의 순환 고리는 자연스럽게 건강한 사회 발전으로 연결된다.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아이들과 부모는 서로의 역할이 뒤바뀐 상태로 살아간다.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받기 위해 부모를 위한 음식을 만들고, 가정의 화목을 위해 휴가를 제안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가족의 사랑인데,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감정을 속이거나 감추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감정과 멀어지고, 부모와 가정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며 ‘애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이런 역할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점점 더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인간 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 (Carl Rogers)는 경험과 표현의 불일치가 심리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며, 감정과 자신이 분리되면서 사회 적응이 힘들어지고 심리적인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한다. 주인공 ‘하나’의 미래는 점점 더 ‘참 자기’와 멀어지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마음이 더욱 무거웠던 것 같다.
반면에 부모들은 아이들과 단절된 채 각자의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가정과 가족은 그냥 힘든 짐에 불과하고, 상황에 따라서 그 짐은 언제든지 내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자신만의 안위와 행복이 가장 중요하고, 가족 구성원의 행복과 건강은 이미 ‘강 건너 불구경’이 된 느낌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는커녕 서로 반목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여과 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사랑을 받기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면, 쓸데없는 일을 한다며 나무라기도 한다. 그 음식은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것인데, 그런 아이들의 감정은 무시당하고 비난을 받는다. 아이들은 어쩌면 그 이후에 사랑을 받기 위해 더 힘든 일도 기꺼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애 어른’으로 살아가고, 어른은 ‘어른 애’로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각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상황이 복잡해지고, 질서가 무너지고, 서로가 원망을 하기도 하며, 세상이 지옥이 된다. 지옥과 천당은 같은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가라는 경종의 의미로 이 영화는 내게 다가왔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하나’는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놓고 이런 얘기를 한다. “밥 먹자. 그래야 여행을 떠나지.”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며 울컥했다. 영화 관람 후 나오면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어릴 적에 식구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있었나?’ 였다. 불행하게도 그런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