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

by 걷고

헤드헌터로 근무할 때 만났던 동료 두 분, L과 M과 함께 며칠 전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M과는 꾸준하게 연락하며 지내왔으나 L은 오랫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저녁 6시경 만나기로 했는데, L은 퇴근 후 도착하면 7시 반 경이된다고 사전에 연락을 해왔다. M과 나는 L이 어딘가에 취업이 되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며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M은 지방 자치단체 직원 채용 면접관으로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역시 좋은 소식이다.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인사업무를 수행했던 M은 최근에 모 대학에서 주 2회 진로 상담 및 취업 준비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외에 명상 공부를 하며 명상 프로그램을 기업에 접목시키기 위한 방법을 구상 중이고, 기업체의 인사 자문 업무도 수행하며 지내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공채 서류 전형 심사 위원 및 면접 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늘 조용하고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많고 차분한 사람으로 나이가 어리지만 그분의 언행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


L은 2년 전쯤에 헤드헌팅 업무를 그만두고 인천의 모 공단에서 생산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국내 대기업에서 인사 및 교육 업무를 수행했던 천성이 곱고 따뜻한 사람으로 글도 잘 쓰고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사회에서의 모든 위치를 내려놓고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곤 하나, 아직도 사회적인 편견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L은 그런 시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삶의 주인으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만족해하며 살고 있다. 주 5일 근무하고, 잔업을 하지 않고, 주말에는 국내 100대 명산 등산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 산행의 느낌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고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분의 얼굴이 2년 전 보다 많이 밝고 힘차 보였고 말에서도 자신감을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심신 힐링 컨설턴트로 심리상담, 명상과 걷기를 접목한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하고 있고, 상담센터 두 곳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며 명상, 행복한 인생이모작, 깨어있는 대화법 등을 주제로 강의도 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정리한 후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데 약 9년여 시간이 흘렀다. 비록 아직은 초보자이지만 다행인 것은 나의 길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나의 삶은 이 길에서 크게 벗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내면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일은 없다. 다만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평생 가기 위한 인내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두 분과의 만남은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셋이 만나 인생이모작에 대해 긍정적이고 희망찬 얘기를 나누니 마음이 편안하고 가벼웠다. 오늘 아침에 그 만남을 한번 돌이켜 보았다. 일반적으로 삶의 기본 요소로 의식주(衣食住)를 얘기한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옷이 없거나 음식을 굶어서 힘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비와 바람을 피할 곳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옷과 음식의 수준을 가격으로 판단하고, 주택의 크기나 위치로 서로를 비교하고, 그런 비교를 기본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런 비교와 판단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감’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의식주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할 일’과 ‘건강’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과 ‘할 일’ 중 특히‘할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에 굳이 소명이라는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냥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면 될 것이다. 할 일이 있으면 삶에 활기가 생겨서 건강해지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하며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되면서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즐기고, 누군가를 돕고, 전문가가 되어 약간의 수입도 발생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게 되면 의식주와 건강 모두 개선되어 좀 더 양호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할 일’을 찾는데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평생 가장으로, 사회인으로, 기능인으로 살아오기에 바빠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여유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보다 나은 사회적 위치를 성취하기 위해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그간 쌓아 온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이미지를 버리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중년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작은 자아’인 ‘자아(ego)’를 벗어나서 ‘큰 자아’인 ‘자기(Self)’를 찾는 과정이 인생 후반부 삶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하였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삶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삶의 틀’을 깨기 위한 고통을 견뎌내야 하며,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에 적응하기 위한 힘든 노력을 해야만 한다. 자신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자신의 성을 스스로 부수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는 일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자기 개혁’이다.


인생 전반부는 주변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서로를 비교하여 가능하면 우위에 서려고 노력을 하고, 그 성취감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행복한 인생 후반부를 위해서는 타인과의 비교와 외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시선과 판단에 두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면 훨씬 편안해지고 단순해진다. 인생이모작은 자기(Self)가 자신의 주인이 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칼 융은 이것을 개성화라고 하였다. 며칠 전 만난 옛 동료 두 명은 이미 인생이모작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며 자신의 개성화를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두 분과의 만남이 더욱 즐겁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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