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by 걷고


무남독녀인 딸아이가 4년 전에 결혼을 했고, 손녀가 태어난 지 벌써 15개월이 흘렀다. 사위, 딸, 손녀는 건강하고 독립적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사위는 나보다 가장의 역할을 잘하고 있어서 가끔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딸아이는 자립심이 강하고 사회성이 좋아서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라서 별로 걱정할 일이 없다. 손녀는 사위와 딸의 자식이니 알아서 잘 키울 것이다.


아내는 탁구 동호회 활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동호회 회원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총무를 맡고 나서는 사람들의 관계로 인해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런 관계와 상황을 통해서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고, 상황에 맞춰 긍정적인 사고와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잘 살고 있다. 또한 고교 동창들과의 정기적인 모임 등 여러 친목 모임에 참석하며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고 있다. 요즘은 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상담사로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상담계에 입문(入門)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 발은 문 안에, 다른 한 발은 문 밖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심리지원센터의 초빙 상담심리사, 사설 상담센터인 ‘잇다 심리상담 연구소’의 상담심리사, 근로복지넷 EAP 상담심리사, 그리고 ‘사회통합치유센터 마음 복지관’의 상담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으니, 입문한 것은 맞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상담 관련 전공 공부를 하고 있다. 언제 다른 한 발마저 문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매일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두 발 모두 문 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상담심리사 외에 명상 프로그램 진행, 심신 힐링 강의, 걷기 프로그램 진행, 글쓰기 등을 하며 스스로 만든 나의 브랜드인 ‘심신 힐링 컨설턴트’로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블로그, 브런치 등 SNS 활동도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SNS 활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저절로 소외될 수 있다는 약간의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껴서이다. 트렌드를 쫓아가는 속도를 맞출 수도 없고, 모든 것을 공유할 수는 없어도, 그 중 일부라도 공통분모를 찾아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다.


사람들에게 ‘심신 힐링 컨설턴트’ 라고 소개하고 있고, 그 일을 통해서 비록 적은 수입이지만 조금씩 수입도 생기고 있다. 사회생활을 정리한 후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만 9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일을 찾는 일도 어렵지만, 특히 살아온 방식과 습관을 갖고 새로운 일을 찾아 자신을 변화시키며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긴 기간 동안 터널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어 힘들었고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어둠을 뚫고 밝고 넓은 세상을 보면 무척 행복할 줄 알았다. 터널 속에 있을 때에는 터널만 벗어나면 희망의 세계가 펼쳐지고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행복한 나날만 계속되리라 생각했었다. 밝음만 생각하며 어둠 속을 힘들게 견디고 지나왔지만, 밝음 속에서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심신 힐링 컨설턴트’로서의 길에 들어왔고 그 길에 대한 확신이 드는데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조금 지쳤고, 무기력에 빠진 느낌이 들고, 즐겁거나 기쁘지 않다. 내면에 남아있던 부정적인 사고방식도 원인이지만, 원하는 바를 일부 이룬 뒤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다.


가장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모두 마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의 삶을 살고 있다. 다행스럽게 ‘심신 힐링 컨설턴트’라는 원하는 길을 찾았고, 그 길에 입문했다. 아내도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고, 딸아이도 출가를 해서 잘 살고 있다. 결국 나 혼자만 잘 살면 우리 가족 모두 잘 살게 되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 가정의 행복이 되고, 가정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슬럼프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정적인 습관, 태도, 사고방식 등의 변화도 필요하다. 명상도 도움이 되지만, 그것보다는 일상 속 마음의 변화를 잘 알아차리는 반복적인 연습도 필요하다. 좀 더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 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제는 그런 성취 지향적인 사고와 행동보다는 좀 더 자신을 돌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조금 쉬어도 되고, 늦게 일어나도 되고, 며칠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과정이 나를 좀 더 편안하고,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요즘은 별일 없으면 아침 식사 후에 50분 정도 걸어서 마포중앙도서관에 간다. 오늘 드디어 김성동의 ‘국수’라는 책 다섯 권 중 네 권을 대여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늘 중간에 한 두 권씩 이가 빠져서 빌릴 수 없었는데, 오늘은 운 좋게 마지막 한 권을 제외하고 모두 빌릴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일이 나를 즐겁게 한다. 조금씩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있나 보다. 글을 쓰면 이렇게 마음 정리가 저절로 되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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