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0
약 7, 8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복잡한 생각을 글로 쓰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고 좋은 글귀나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쓴 글을 모으고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서 글을 모으고 관리하는데 블로그가 좋다는 조언을 듣고 지금까지 꾸준히 글과 사진을 올리며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걸으며 느낀 점을 글로 정리하여 사진과 함께 후기를 올리고 있다. 블로그와 걷기 동호회 활동이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내가 쓴 글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글쓰기 향상에 도움이 되고, 나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편협한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의 지도를 받고 싶었다. 우연한 기회에 (사)국어문화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인 ‘틔움’ 과정과 ‘키움’ 과정을 알게 되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운 좋게 좋은 스승과 도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불가(佛家)에서는 10년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그 기간 동안 스승을 찾아 헤매는 것이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홀로 공부할 경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아만과 교만이 높아지고, 사법(邪法)을 익히면 정법(正法)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또 스승만큼 중요한 사람들이 도반이기에 올바르게 정진하는 도반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글쓰기 공부에 반드시 필요한 스승과 도반을 모두 만난 행운아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모임은 두 곳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약 7년 넘게 활동하고 있고, 최근에 글쓰기 수업 모임에 참여하여 정기적으로 글쓰기 지도를 받고 있다. 왜 이런 모임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싶을까? 걷기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단순히 걷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듯이,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이유도 단순히 글을 체계적으로 배워 좀 더 잘 쓰고 싶어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글 쓰는 법을 배우고 글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또한 걷기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면 걷는 시간이 늘어나고 다양한 코스를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긷기 운동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단순히 작문 능력의 향상과 걷기 운동의 강화를 위해서 이 두 모임에 참여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앞으로 평생 같이 활동하며 공통 화제를 갖고 얘기하며 함께 살아갈 동무가 필요해서 이 두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에 대한 개념이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지인들을 A, B, C 군으로 분류하여 관리(?)를 한 적도 있었다. 몇 년 지난 후에 그런 분류의 무의미와 어리석음을 느껴서 더 이상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사람에 대한 분별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친구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바로 지금-여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누군가를 위해 할애하는 시간과 금액에 비례해서 그 사람의 중요도가 결정된다.’라는 말이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최근 들어 시간이 점점 더 아깝고 소중해지며, 사용할 수 있는 자원과 에너지의 한계로 불필요한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약속을 할 때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 모임과 걷기 동호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또는 서너 번 이상 만나는 친구들로 가족을 제외하고는 가장 자주 만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만나는 사람들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삶의 충만감을 느끼고 싶고 고립되기 싫어서 이런 모임들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 모임인 ‘키움’에서 만난 분들의 연령대는 50대에서 80대까지 그 폭이 넓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께서 배움의 의지를 지니고 글쓰기 공부를 하고 계신다는 점이 놀라웠다. 높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두세 시간 앉아서 진행되는 수업에도 거뜬하게 버티고 앉아 수업에 집중하시고,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귀를 기울이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가벼운 친절에도 감사함을 표현하시는 모습과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대하지 않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연세 드신 분들의 멋진 모습을 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나도 그 나이가 들 때까지 이 자리에 남아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그렇게 하고 싶다.
이 모임의 중심에 글쓰기 선생님이신 ‘N’ 선생님이 있다. 글쓰기 관련 책을 뒤져보기도 했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기법이나 방법에 대한 얘기는 있지만, 기본과 핵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운 좋게 ‘N’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줄탁동시 [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닭이 알을 깔 때에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주로 사제지간의 귀한 인연을 의미한다. 이 모임에서 ‘N’ 선생님을 만난 인연이 바로 줄탁동시이다. 눈 밝은 스승을 만나면 맹인인 제자도 눈을 뜰 수 있다. 물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려는 노력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하수(下手)는 고수(高手)를 알아보지 못한다. 반면 말 한마디, 행동 한 가지, 글 한 줄을 통해서 고수는 하수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다. 글에 대한 나의 모습을 얘기하는 것이다. ‘키움’ 과정에서는 매월 각자 한 편씩 글을 써서 제출하여 신문을 만들고, 글에 대한 선생님의 피드백을 듣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신문을 읽으며 글쓴이의 감정은 조금 느낄 수는 있지만, 그 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잘 쓴 글인지 아닌지 구별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글에 대한 나름대로의 식견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아직 남의 글을 평가하고 분별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지는 못했다. 영화 후기를 제출했는데, ‘영화 줄거리를 통하여 독자가 판단하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 필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듯한 글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하수가 고수로부터 한 수 배운 것이다. 식견을 갖춘 스승과 도반들만이 하수들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적절한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
글의 내용은 삶의 반영이다. 어제 ‘N’ 선생님은 ‘철학은 삶의 경계에서 나온다.’라는 귀한 말씀을 하셨다. ‘삶의 경계’라는 말을 나는 ‘삶의 역경’으로 해석하고 싶다. 삶이 순탄하기만 하다면 그 삶에는 내용물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삶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삶 속에서 만나는 역경을 통해서 우리는 겸손을 배우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한 인간으로 성숙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삶의 역경은 자연, 하늘, 신, 또는 보이지 않는 우주의 운영자가 내려준 귀한 선물이다. 역경이 선물이 되고, 그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어진 삶을 수용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소명을 자각하고 겸허히 받드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글쓰기 교실에 참여하신 분들의 글과 말씀을 통해서 인생을 듣고 배울 수 있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고 ‘삶’이다. ‘글쓰기’는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넘쳐흐르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수업 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글쓰기, 모임의 활성화를 위한 제안, 삶의 경험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 모습이 마치 곧 ‘사라질 희귀한 문화’를 보는 것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면 자식 얘기, 재산 얘기, 건강 얘기, 과거 얘기, 여행 얘기 등이 주 화젯거리이다. 소재가 쉽게 고갈되거나 반복이 되어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런 얘기를 듣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 돈을 쓰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친구들 중에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오는 인연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만남의 횟수는 줄어들고, 간격은 멀어진다.
어제 글쓰기 수업과 이어진 식사 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톨스토이의 글이 떠오른다.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시간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