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는 계절마다 각기 다른 꽃들이 피고 진다. 정원을 관리해 주지 않으면 잡초들이 무성하게 올라온다. 사람들은 잡초들을 제거하여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려 하지 잡초들만 가득하다고 정원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든 또는 잡초로 가득하든 정원은 정원이다. 우리 마음도 이와 같다. 마음의 정원을 꽃으로 가득하게 만들지, 아니면 보기 싫은 잡초로만 가득 채울지 그 결정권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마음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바로 ‘판단하지 않기’ 연습이다.
이 연습을 하게 된 계기는 사소한 일로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불안해지기도 하고, 때때로 화가 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여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미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하고, 내재된 부정적인 사고로 인해 스스로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돌이켜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 힘들게 만든다. 대부분 ‘머릿속 잔소리꾼’이 만들어 낸 허상에 속아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고 있다. 그 잔소리꾼은 '지금-여기'와는 관계가 없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 또는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따라서 그 허상을 바탕으로 내린 판단과 결정은 대부분 옳지 않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망상애 불과할 뿐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璨) 대사는 신심명(信心銘)이라는 글을 저술하였다. 선(禪)의 요체가 잘 나타나 있는 이 글은 아래 구절로 시작된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고 (지도무난 至道無難)
오직 가리고 선택함을 꺼릴 뿐이니 (유혐간택 唯嫌揀擇)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단막증애 但莫憎愛)
확 트여 명백하리라 (통연명백 洞然明白)”
승찬 대사께서 이 글을 첫 구절로 쓰신 데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분별심(分別心)이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분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용어지만, 불가에서는 시비를 따지고, 흑백으로 구분하고, 너와 나를 구별하는, 불법과는 거리가 먼 해서는 안 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위의 구절에 나오는 ‘가리고 선택’하는 마음이 바로 분별심이다. 분별심으로 인해 ‘좋고 나쁨’ 또는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이 떠오른다. 분별로 인해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 분별심은 실상(實相)에 대한 무지(無知)로 인해 나타나고 그 무지로부터 해방이 되기 위해서는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정견(正見)을 갖추어야 한다고 불교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지금 연습하고 있는 ‘판단하지 않기’는 정견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나와 주변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다. 반복을 통한 훈련을 통해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그런 작은 통찰들이 쌓여 정견을 이루게 되고 분별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분별로부터 벗어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다.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생각나는 대로 연습해 나가 그 순간만큼이라도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니고 살고 싶다.
이런 연습을 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옳고 싶은가? 행복하고 싶은가?”라는 말이 있다. 어떤 면에서 시비는 별 의미가 없고, 굳이 시비를 가릴 일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판단과 결정’을 보류하고 지금-여기에 충실해야만 한다. ‘판단과 결정’은 모두 과거와 미래의 일들이다. '지금-여기'에 충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판단과 결정’이 아니고 ‘옳고 그름’이 없는 지금의 ‘감각과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다. 감각과 느낌은 그저 감각과 느낌일 따름인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고통이 시작된다. 감각과 느낌은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에 불과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사라지고, 다른 것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사라진다. 마치 해변의 썰물과 밀물, 파도와 물거품이 나타났다 사라지듯이. 이때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사라지는데 감정과 생각을 부여함으로써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는 서른일곱의 하버드대 뇌 과학 연구원이었던 질 볼트 테일러 (Jill Bolte Taylor) 박사가 뇌졸중을 맞이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내용을 뇌 과학자의 시각으로 써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뇌졸중으로 좌뇌의 기능이 상실되자, 판단력과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면서 우뇌의 감정과 마음이 활성화되어 행복감을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다. 저자는 “평화는 생각하기 나름이야. 평화를 이루려면 지배적인 왼쪽 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만 하면 돼.”라고 얘기하며 행복의 조건으로 비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감정의 수명은 90초이며, 그 이후에도 감정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그 감정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승찬 선사(禪師)는 ‘가리고 선택하지 않는 것’이 도(道)에 이르는 길이라 하였고, 뇌과학자인 테일러 박사는 ‘비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동양 불교의 대표주자인 선종(禪宗)과 서양 최첨단 과학인 뇌 과학이 얘기하는 행복의 조건은 그 맥을 같이 한다. 선승은 마음의 평온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방편이 분별심을 내려놓는 것이라 하고, 뇌과학자는 최첨단 기법과 기술을 사용하여 비판단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연습하고 있는 ‘판단하지 않기’ 연습은 행복한 삶을 위한 연습이다. 손주들을 아내와 함께 돌보면서 가끔은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만 하는 일’이 방해받아 마음속에 불편함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그 마음을 바라보며 ‘판단하지 않기’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여기' 손주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돌보는 일이 이 연습을 위한 좋은 방편이 되고 있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연습하고 있고, 상담을 하면서도 연습하고 있다. 특히나 상담심리사로서 내담자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나 섣부른 판단은 내담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고, 또 주변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 정원을 가꾸는 방법이자 이유이다.